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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Jul 08. 2017

왕십리 역다방

왕십리 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역다방 카페가 있다. 역다방 카페라고 하면 동어 반복인가, 그러면 역다방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는 커피+프리마+설탕으로 만들어진 2500원짜리 역다방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맛은... 믹스커피 3 봉지에 물을 정량보다 살짝 덜 넣은 맛이다.


여기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하면 신기한 게 있다. 8분마다 발이 간질간질하다는 것이다. 뭔가 했는데, 왕십리역으로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진동이 울려 발을 간지럽힌다.


역다방 안은 좁아서 몇 명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옆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눈에 띄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도 들린다. 3일 전 1시 반쯤에는 14명이 있었다. 22명이 앉을 의자에 14명이 찼으니 시끌벅적했다. 20대로 보이는 9명은 왁자지껄 떠들었다. 한 커플은 마주보고 얘기했다. 둘은 동시에 웃었다. 다른 커플은 나란히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5명은 뭔가 어색함이 느껴지는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이다.", "그러게 뭐하고 지냈어."


50대로 보이는 두 남자는 교수인 것 같았다. 대화 내용이 학구적이었다. 중국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교수의 말이 항상 그렇듯,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주문도 없이, 그냥 가만히. 그렇게 있다가 졸았다. 앉아서 꾸벅꾸벅. 삼십 분이 지났을까,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왔다. 한숨을 푹 쉬더니 양 손 가득한 장바구니로 할머니를 툭툭 쳤다. 할머니는 놀라면서 깼다.


할아버지는 과일 주스 두 잔을 사서 할머니 맞은편에 앉았다. 둘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5분 동안 주스를 흡입하고 자리를 떴다.


나는 거기서 <호모 데우스>를 마저 읽었다. 인간의 행동, 의지, 감정 모두 알고리즘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말했다. 인간은 곧 사피엔스를 넘어 신이 될 거라고 유발 하라리가 말했다.


<호모 데우스>(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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