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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Nov 30. 2017

200 종교

남의 글이나 말을 이해할 수는 있도록 하자. 내가 새로운 답을 창조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미 나온 해결책은 알아듣도록 하자. 대학생활 목표였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길 원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도서관은 도서 분류표에 따라 책을 나눈다. 주제별로 굵직하게 열 덩이로 구별한다. 000대는 총류, 100대는 철학, 200대는 종교, 300대는 사회과학, 400대는 순수과학, 500대는 기술과학, 600대는 예술, 700대는 언어, 800대는 문학, 900대는 역사. 학교 도서관이든 동네 도서관이든 똑같이 구분한다. 


한 분야 전문가보다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아는 것을 추구하는 나는, 숫자 편식 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대출목록을 훑어보니 골고루 섭취했다. 특출 나게 자주 찾은 곳은 없었다.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은 있었다. 200, 종교였다.


부끄러웠다.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200번대 책을 한 권도 빌리지 않았을 줄이야. 동네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대출목록에 없어도 혹시 그 자리에서 볼 수는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확실히 나는 200번대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


내가 종교를 가지지 않았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옳지 않다. 내가 신을 부정해도 나 말고 많은 사람이 신을 믿는다. 독고다이로 살게 아니라면, 남들과 대화해야 하지 않겠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로서 살고 싶다면 더더욱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종교를 피해선 안된다.


일부러 200대를 찾아야 한다. 종교가 없어도 종교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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