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복 내가 만들고
내 식복 내가 만드는 비법

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무행 스님 1편

by H영
봄의 들녘에 파릇파릇하게 난 것들은 모두 약초 아닌 것이 없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 햇살 아래로 고개를 내민 여린 풀들은 그 자체로 약이다. 그래서 그맘때는 이름 모를 풀일지라도 맛있고 독쇄기 풀조차 맛있다. 푸른 것이면 아무거나 툭툭 잘라도 모두 나물이 된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봄의 보약들

“좋아하는 음식이요? 아따, 이것도 저것도 없당께요. 요맘때는 그저 파릇한 것이 최고지라. 산에 올라가 아무 풀이나 잘라도 고것이 다 맛있는 나물이요 맛있는 거요. 특히 2~3월에 올라온 것들은 독이 없어서 독쇄기 풀도 맛있재요. 가을에 파종해 놓은 시금치나 배추 같은 채소도 물론이고. 겨울을 견뎌서 난 건 다 약이라요. 병충해가 없응께 농약도 안 치고. 그러니 천지 풀들이 다 약초지라.”


지리산 자락의 한 토굴에서 기도 수행 중인 무행 스님. “봄의 음식은 곧 약”이라는 스님은 유독 나물을 좋아한단다. 하지만 스님이 좋아하는 나물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른 봄, 지천에 파릇하게 올라오는 모든 풀이 곧 나물이라 가릴 것 없이 다 좋다.


“나물은 무르지 않게 삶는 게 중요하재라. 소금을 미리 풀어 물이 끓을 때 살짝 데쳐야 색과 향이 살고 밑간도 배인께. 그래야 설컹설컹 씹히는 맛도 있고 치근도 발달돼 건강에도 좋은 거요. 제대로 데쳐 된장에 버무리기만 하면 되니께 나물 요리는 엄청 간단하면서도 보약 같은 음식이재요.”


나물을 무칠 때는 사실 된장만 한 양념이 없다. 하지만 된장으로 버무릴 때도 풀이 지닌 고유한 맛과 향을 헤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간을 맞출 정도면 족하다.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것.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재료 고유의 성질을 죽이면 곧 죽은 음식과 다름없다.


“대부분의 음식들을 보면 진국은 대개 하수도가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아라. 좋은 영양소는 다 빼 불고 우리는 수분만 섭취하는 꼴이재요. 우거지로 배춧국을 끓일 때만 해도 재료를 삶아 물에 몇 시간 동안 우리는디, 고것이 종이배추지 어디 배추 맛이 남아 있간디요. 결국 양념 맛으로 먹게 되니께 그렇게 양념 잡탕으로 만든 음식은 아무리 맛있어도 사실 살아 있는 음식이 아닌 거요.”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작지만 중요한 부분을 의외로 많이 놓치고 있다. 찌개를 끓일 때만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넣는 양념과 부재료들이 있다. 가령 고추 하나를 썰어 넣더라도 왜 이 고추를 넣는지 잠깐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답은 간단하다. 고추의 매콤함을 즐기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한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찌개가 거의 끓을 때쯤 고추를 넣어 반숙하는 것이 좋다. 미리 넣게 되면 고추 표면이 비닐처럼 질겨져 씹는 맛은 물론이고 맛과 향의 신선도를 잃게 된다. 이렇듯 음식의 근본 이치만 잠깐 따져 봐도 좀 더 제대로 요리할 수 있다.



풍작을 위한 가장 중요한 거름은 ‘마음’


무행스님에게 봄은 나물의 계절인 동시에 농사의 계절이다. 스님은 밭농사의 달인이다. 다른 이들이 호박 한 개를 수확할 때 스님은 열 개를 수확할 수도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처음 농사를 지을 때는 실수가 많았다. 가령 작물에 비료를 줄 때 뿌리에 닿게 준 바람에 농작물을 거의 죽인 적도 있었다.


“토마토 농사를 지을 때였는디 아고, 얼매나 아픈지…. 자식이 죽은 것 마냥 마음이 아픈 거여. 그래서 비료가 뿌리에 완전히 닿지 않는 놈들이라도 살려볼라고 기를 쓰는디 이웃 농부들이 그런 경우엔 절대 소생이 안 된다는 거여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재요. 토마토가 호박넝쿨처럼 뻗어나가 풍작을 거뒀응께. 그때 고추니 가지니 피망 등을 키우믄서 농사의 묘미를 알았재라.”


그 과정에서 터득한 것이 있다. 풍작의 가장 중요한 비법은 ‘마음’이라는 것을. 마음이라는 거름을 충분히 주면 작물들은 정확히 그만큼을 보상해 준다. 인간도 미물인지라 어떠한 미물들이든 교감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마음을 열면 산의 나무들이나 텃밭의 채소와도 교감할 수 있다. 진심 어린 기도와 애정 어린 마음을 보이면 씨만 뿌려도 저 알아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농사의 묘미란 수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씨를 뿌리고 키우면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작은 과정 하나하나에서 행복과 귀중한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게 된다.


“오가면서 물도 주고 말도 걸어줌시롱 키우는 재미가 얼매나 큰지, 고것부터가 행복이재요. 그렇게 키우면서 색색별로 열매 맺는 걸 보는 재미도 행복이요, 수확해서 나눠먹는 행복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어라. 절에서 기도하면서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곤 하면 보살님들이 절에 기도하러 오는 게 아니라 장 보러 올 때도 많았재요. 퇴비로만 키웠응께 시장에서 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그런 재료들로 음식을 하면 맛 자체가 틀릴 수밖에요. 그렇게 키운 채소들을 나눠주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재요. 그땐 사실 말도 필요 없는겨. 주고받는 가운데 하나가 돼버린께, 이미 서로 싸인 끝나버린겨.”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찌개 하나로 샤부샤부까지 되는 산중 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