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의 음식이자 진심의 음식, 죽

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자 - 영만 스님 2편

by H영



죽 같지 않은 죽의 비결


‘스님들의 어머니’로 통하기도 했던 조몰락 보살님은 태안사를 거쳐 간 수많은 스님들의 행자 시절과 성격, 식성까지도 일일이 기억한다. 흘러간 세월을 무색게 하는 보살님의 또록또록한 기억은 아직도 ‘호박잎과 머위쌈, 시래기나물을 좋아하는 영만 스님’이라는 데이터를 족집게처럼 끄집어낸다.


그 마음은 자식을 대하는 어미의 심정과 다름 아니라, 오랜만에 해후라도 하면 보살님은 어김없이 데이터에 맞춰 조몰락의 솜씨를 발휘하곤 한다. 콩알이 듬성듬성하니 구수하게 박힌 된장에 겨우내 말려둔 시래기를 삶아 조물조물 무쳐내고, 매콤한 고추를 다져 넣고 걸쭉하게 끓인 강된장에 머위쌈을 곁들여 천하에 부러울 거 없는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다.


그런 공양주 보살님을 생각할 때면 스님은 태안사의 행자 시절이 떠오르곤 한단다. 초발심이 성성했던 그때는 ‘신심’으로 충만한 시절이었다.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조차 수행으로 생각되어 마음을 닦아내는 일처럼 즐겁기만 했다.


“저는 홀로 행자 시절을 보냈어요. 중간에 두 명의 행자가 들어오긴 했는데, 궂은일들을 못해 며칠 못 가 나가버리곤 했죠. 그중 한 행자는 대학교수 출신이었는데, 고무장갑을 끼고 변기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줬더니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참선하고 수행하기 위해 출가한 거라 이런 일은 비위가 약해 못하겠다는 거였죠. 사실 참선이나 화장실 청소나 알고 보면 똑같은 수행이에요. 대중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고요.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참선보다 몇 배는 뛰어난 수행이라고도 할 수 있죠.”


아침 공양(식사)을 준비하는 일도 행자들의 몫이었다. 선방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큰절은 아침 공양으로 죽을 먹는지라 스님은 새벽마다 공양간에서 죽을 쑤어야 했단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새벽마다 죽을 끓이다 보니 나중엔 ‘죽의 달인’이라도 되겠더군요. 죽도 찬처럼 똑같은 메뉴를 연달아 올리면 안 되니까 다양하게 끓여야 했죠. 전날 흰 죽을 끓였으면 오늘은 잣죽이나 땅콩죽을 끓이고 내일은 깨죽, 다음 날은 누룽지를 끓이는 식이예요. 죽 공양을 할 땐 여러 찬 필요 없고 단무지나 장아찌, 김가루 정도만 준비하면 되니 상차림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었죠.”


단순해 보이는 음식이지만 죽은 한 끼 식사대용이므로 밥만큼이나 제대로 끓여야 한다. 그래서 죽을 끓일 땐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다. 죽이 죽 같으면 안 된다는 것. ‘죽 같지 않은 죽’이라 함은 쌀알이 퍼지지 않고 힘과 끈기가 살아있는 죽을 뜻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요령이 있다.


전날 밤에 미리 불려둔 쌀을 물이 팔팔 끓을 때 넣어주는 것이다. 반드시 끓는 물에 넣어야 쌀알이 퍼지지 않으면서 쫀득쫀득해진다. 처음엔 센 불에서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끓이다 어느 정도 쌀알이 익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조정하고 갈아놓은 잣이나 땅콩, 깨 등의 부재료를 넣고 계속 저어주면 된다. 그런 후 물의 양이 차차 줄어 죽의 농도가 되직해지면서 주걱이 뻑뻑하게 저어질 정도가 되면 완성단계에 이른다. 이때 굵은소금으로 살짝 간하면 되는데, 식성에 따라 간하지 않고 담백하게 먹어도 좋다.


죽을 잘 쑤기 위해서는 젖는 일 또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잠시 방심했다가는 바닥에 눌어붙기 십상이라 계속 신경 쓰며 저어줘야 하니 죽은 사실 정성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환자들을 위한 죽은 고통이 빨리 낳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끓여야 진짜 죽이라 할 수 있기에 진심의 음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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