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를 위한 최고의 효도 식품

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우봉 스님 편1

by H영

산사의 겨울은 일찍 찾아든다. 가을 끝자락 알싸한 기운이 코끝에 느껴지는가 싶게, 겨울 찬바람에 마음까지 스산해진다. 그쯤이면 본능처럼 그리워지는 음식이 있다. 절집 방 한 켠 뜨뜻한 아랫목에선 이미 볏짚과 이불을 뒤집어쓴 청국장이 본연의 향기를 품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절에서 음식이란 수행하는 몸을 지탱하기 위한 약이다. 특히 청국장은 겨울 한철 잊지 않고 챙겨먹어야 할 보약과 같다.



잘 익은 청국장 하나면 절로 되는 고단백 보양찌개


이런저런 재료가 필요 없다. 잘 익은 청국장 하나면 청국장찌개는 절로 되는 음식이다. 다시마나 버섯, 무와 같이 절집에서 주로 국물을 낼 때 사용하는 식재료들조차 청국장을 끓일 때는 번거로울 뿐이다. 그저 콩 건더기가 적절히 박힌 청국장을 인심 좋게 떠서 물에 푼 다음 신 김치와 무를 약간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주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식은 죽 먹듯 콩의 진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찌개도 드물 것이다.


“청국장을 만드는 방법도 어려울 게 없어요. 단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재료의 선별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청국장을 만들 때는 무엇보다 콩이 좋아야 해요. 국산 콩을 제대로 골라 써야하는데 요즘은 수입산이 많으니까 조심해야 해요. 수입산은 농약 때문에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거든요. 된장보단 청국장을 띄울 때 그 차이가 극심하게 드러나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지푸라기예요. 청국장을 띄울 땐 지푸라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균이 잘 배양되기 때문에 좋은 지푸라기를 구하는 것도 중요해요.”


“청국장 하나면 겨울 한철을 족히 난다”는 우봉 스님. 주로 선방과 토굴생활을 해온 스님은 청국장만큼 요모조모로 만만하고 기특한 음식이 없단다. 우선 같은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일지라도, 된장에 비해 청국장의 제조법은 무척 간단하다. 처음 한두 번은 서투를 수 있지만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우선 콩을 물에 푹 불려 삶아줘야 해요. 손가락으로 눌러 으깨었을 때 마치 입자 고운 파우더처럼 문드러질 정도로 익혀주면 돼요. 삶을 땐 물의 양이 중요한데, 너무 적게 넣어 콩이 탈 정도가 되서도 안 되고, 또 너무 많이 넣어 콩 삶은 물에 맛과 영양소가 다 빠져나와서도 안 되죠. 콩을 삶은 다음엔 물기를 빼서 그대로 뜨뜻한 아랫목에 볏짚을 덮고 이불을 씌어놓는 거예요.”

그렇게 발효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보통은 이삼일 후면 먹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방안의 온도와 입맛에 따라 발효기간에 차이가 있긴 하다. 농익은 맛을 선호하다면 며칠 더 발효시키면 되고, 큼큼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면 덜 발효시키면 된다.


“균이 콩 표면을 녹여 점성이 짙어지면 주걱으로 떴을 때 하얀 실타래 같은 것이 딸려 올라오면서 끈기가 생겨요. 이렇게 발효된 콩을 절구로 찧어주면 되는데, 콩 건더기가 완전히 뭉그러지지 않도록 적당히 찧어줘야 제 맛이 나죠.”


제조법 간단하고 발효에 따라 맛과 향의 농도를 달리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식품 청국장. 고단백 콩을 발효시켜 만들었으니 그 특유의 구수함과 영양가에 대해선 말해 무엇 할까. 요모조모 따져 봐도 겨울철 이보다 기특하고 만만한 음식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청국장은 홀로 건강을 챙기며 수행해야하는 토굴 생활에선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식품이다. 사실 토굴에서 생활하면서 오직 한 입을 위해 요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수행을 위해 필요한 몸과 그 몸의 약과 다름없는 음식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때 청국장찌개와 김치 하나만 있으면 이 같은 고민은 무색할 따름이다. 그러니 수행자에게 있어 청국장은 더할 나위없는 효도 식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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