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우봉 스님 2편
산사의 가을은 짧은 머무름이 못내 아쉬운 듯 온 지천을 낙엽밭으로 일궈놓고 떠난다. 가을의 마음과 흔적처럼 곳곳에 너부러져 쌓여있는 낙엽들은 산사의 월동준비와 농사에 요긴한 재료가 된다.
“수덕사 선방인 정혜사에서 원주(공양간 살림의 총책임자)로 살던 적이 있었어요. 정혜사는 백제시대의 고찰인데, 창건 이래로 지금까지 ‘선농일치’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죠. 예전부터 선종 계열의 절들은 산속 깊이 자리하고 있어 식재료 조달이 힘들었거든요. 탁발을 나가도 대부분 쌀이나 곡류를 얻어오니까, 찬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스님들이 밭을 일구고 식물들을 채집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절에 산채음식이 발달된 것은 그러한 이유도 있어요. 정혜사는 그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식재료의 60% 이상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정혜사는 무농약은 물론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따라서 농작물의 천연비료인 ‘퇴비(두엄)’는 항시 준비되어 있어야하는 필수품이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분뇨에 지푸라기를 섞어 발효시켜야하는데, 문제는 산에서 지푸라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산 지천에 널린 낙엽들이 지푸라기를 대신해 유용하게 쓰인다.
“정혜사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어요. 우선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벌레 잡는 일부터가 만만치 않았죠. 무엇보다 퇴비를 만드는 게 힘들었는데, 볏짚을 구하기 어려우니까 낙엽을 섞어 쓰곤 했어요. 하긴 요즘은 기계로 벼를 수확하니 어디서든 볏짚을 구경하기 힘들어졌죠.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화학조미료나 방부제 섞인 음식들을 많이 먹으니 분뇨조차 썩지를 않아요. 썩어서 발효가 일어나야 퇴비를 만드는데 발효 자체가 안 되니 퇴비를 만들기가 힘들죠. 그러니 일반 농가에서 유기농 농사를 한다는 건 사실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선방 스님들은 화학조미료나 인스턴트식품을 자제하고 자연식 위주로 식사를 하니까 분뇨가 썩어 퇴비로 쓸 만하죠.”(웃음)
정혜사의 농작물은 말하자면 수행자들이 무농약과 유기농 농사를 통해 선을 닦은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들은 그 자체로 보약과 같다.
“그래서 무엇보다 쌈이 맛있었죠. 겨울에는 채소를 재배할 수 없으니 밖에서 공급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낙엽을 활용하면 시금치나 고수 정도는 겨우내 재배해 먹을 수 있었어요. 가을에 밭에 씨를 뿌려 싹이 올라오면 겨울녘에 낙엽을 덮어두는 거예요. 낙엽들이 비닐하우스 역할을 해서 겨우내 생명을 지켜주는 거죠. 한겨울에 낙엽을 걷어내고 시금치나 고수를 똑똑 따먹는 맛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배추도 김장김치 할 때 일부는 뽑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볏 집단이나 낙엽을 두툼하게 덮어두면 한겨울 전까진 싱싱하게 먹을 수 있었죠. 고놈을 캐다 날로 된장에 찍어먹기만 해도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기가 막혔죠.”
가을의 이별선물과 같은 낙엽들은 산사의 농사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으로 생산된 겨울밭 수확물들은 산사 식구들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귀중한 식량이 되어주었다. 그중 대표적인 메뉴는 시금치였다.
“시금치는 몸에 좋은 고급 나물이지만 고사리처럼 독성이 많아 익혀서 먹어야하죠. 나물류는 맹독성인 경우가 있어 주로 삶거나 말려 독을 빼낸 후 요리해야 해요. 생야채를 먹는 것은 그 안에 기운을 섭취하는 거라, 몸이 약해졌을 때 갓 따온 야채를 먹으면 몸 안에 바로 생기가 돌죠. 그래서 토굴에서 생활할 때 몸이 처진다싶으면 신선한 야채를 사다 먹곤 했어요. 하지만 모든 생명엔 독이 있기 마련이라 가급적 익혀먹는 것이 좋아요. 화식을 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조리를 통해 음식의 독소를 빼내고 섭취했기 때문이에요. 몸이 원할 땐 생식도 좋지만, 생식을 자주 하는 것은 몸을 되레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