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첫날, 사무실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묵묵히 일하고 있었고 대화는 거의 없었다.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팀은 한국인 1명, 대만인 1명, 일본인 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간단한 팀원 소개가 있었지만 어색한 인사는 금세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팀에서 홀로 일하고 있던 '김상'은, 드디어 정서를 나눌 수 있는 한국인이 생겨 반가웠는지 기쁘게 맞아주었다. 덕분에 일본 생활 내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일본에서는 근무 시간 중 개인 휴대폰을 사용 할 수 없어 업무용 폰도 따로 지급받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이 금기시되니 업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몇몇 팀원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홀연히 사라졌다. “먼저 먹고오겠습니다” 같은 언지도, 누구에게 말 걸 틈도 없이 흩어졌다. 처음엔 도무지 적응이 안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원래 그런 문화라고 한다. '너무 정없는거아닌가' 조금은 서운하게 느껴졌던 그 거리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오히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말없이 밥을 먹고 주변 공원을 천천히 산책한 뒤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 루틴이 어느새 작은 휴식이 되었다.
IT 특성상,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코드는 세계 공통인지라 업무 자체는 한국에서 일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주변 언어와 표현, 업무를 전달하는 방식, 메신저 말투 하나까지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외국어로 진행되는 회의, 예의 바른 인사로 가득한 사무실, 익숙하지 않은 지하철 노선,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서서히 그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어느새 아침 공기가 뚜렷하게 차가워졌다. 도쿄는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다길래 방심하고있었는데 겨울은 겨울이었다. 체감 추위는 생각보다 매서웠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밖보다 집 안이 더 춥게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처럼 온돌이 있는 것도 아니라 히터로 공기를 데우는 방식인데, 난방을 켜고 자면 방 안은 금세 건조해져 목이 따갑고 눈이 뻑뻑한 아침이 반복되었다. 그렇다고 히터를 끄고 자자니, 분명 집에 있는데도 외풍을 그대로 받아 손발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어느 쪽을 택해도 아늑하지 않은 겨울이었다.
회사에서는 연말을 앞두고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회의와 검토가 반복되는 분주한 나날 속에서 팀과의 호흡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내 의견이 반영되고, 함께 조율하며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도 이 팀의 일원이라는 실감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도쿄는 눈이 쌓이는 일이 드물어 조금만 내려도 교통이 마비된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이면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권유하곤 한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눈이 내렸는데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근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집이 코앞인데 진짜 가도 되나...?’ 싶었지만, 그냥 하루 일찍 쉬라는 말에 스리슬쩍 퇴근 무리에 섞였다. 그렇게, 눈 내리는 도쿄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도쿄의 겨울은 차분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하루의 시간도 조용히 흘러갔다.
달력에서 마지막 숫자로 가까워질수록 이곳에서의 한 해가 끝나간다는 실감이 조금씩 찾아왔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