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선 하나

by 구하늘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출근 준비를 한다.

아직 덜 깬 정신을 이끌고 문을 나서면, 버스와 지하철이 힘을 합쳐 나를 회사까지 운반해준다.


저녁 무렵이 되면 퇴근과 동시에 등록해두었던 체육관으로 향한다.
일과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하루도 저물어간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

무던한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갔다.

하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쉬게 되면서 익숙했던 리듬에 균열이 생겼다.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던 시간이 텅 비어버리자, 처음엔 그 여유가 마냥 좋았다.

그러나 몇 날 며칠, 널브러지는 하루가 반복되자 마음 어딘가에 왠지모를 공허함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퇴근길이 유독 허전하게 느껴졌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엔 뭔가 아쉬웠다.


아직 바람이 차던 계절이라 마땅히 어슬렁거릴 곳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문득 회사 근처의 작은 서점이 생각났다.

요리, 외국어, 여행...

무심하게 책 표지만 훑으며 떠돌다, 유독 파란 그림책 한 권에 시선이 멈추었다.


목차부터 스르륵 넘겨보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로 선긋기으로 시작했지만

곧이어 아무나 그릴 수 없을 것 같은 그림들이 펼쳐졌다.


<카콜의 어반스케치 기초>

표지에는 "기초"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게 기초...?"

평소라면 책장에 바로 돌려놓았을텐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손이 책을 놓지않았다.

그리고 몸이 먼저 계산대로 향하고있었다.




늘 그림에 대한 로망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있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이나 여행에서의 장면들을 감정과 함께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바쁘다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배워보려 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어차피 잉여 시간이 생겼으니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일단 해보기로 했다.

가로선, 세로선 쭈욱ㅡ

기본적인 선긋기뿐이었지만 노트에 끄적이고 있는 동안 마음의 공허함이 채워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언젠가부터 해가 바뀌어도 목표를 세우지 않았는데 올해는 조금 서툴더라도 그림을 그려보고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