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없이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정작 펜으로는 한 글자도 쓰지 않는다.
그런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다 보니, 펜을 쥐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진다.
의욕과는 다르게 몸은 이미 뒹굴거림에 익숙해져있어,
작심삼일은커녕 이튿날부터 책상 앞에 앉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매일 8시간 노동을 하고, 아침 저녁 출퇴근에 도합 3시간을 쓰고있으니 쉬고싶어지는것도 당연한거겠지.
우리는 비싼 물건을 살 때 할부를 선택하곤한다.
한 번에 100만원, 200만원을 내는 것보다 10만원, 20만원씩 나누어 내는 쪽이 덜 부담되기때문이다.
어쩌면, 시간도 비슷한게 아닐까.
하루 10분.
멍하니 노래 2~3곡을 듣고있으면 순식간에 흘러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일주일이면 1시간이 되고 한 달이면 4시간이 된다.
"하루 10분만 그림을 그려보자"
생각의 방향을 그렇게 바꾸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가로, 세로, 대각선만 그었다.
적당한 크기의 네모 박스를 그리고, 그 안을 선으로 채워나갔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선과 선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의외로 집중력을 요구했다.
특히 대각선은 각도까지 신경 써야 해서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고있으면 금세 선들이 흐트러지곤했다.
그렇게 A4 크기의 종이를 채우는데 딱 10분이 걸렸다.
10분...
10분...
10분...
시간이 겹겹이 쌓이고 노트가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굳어있던 손의 미세한 근육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딱히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그 시간은 꽤나 즐거웠다.
이제 선이 아닌 무언가를 그려보고싶다는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