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을 장에 내다 팔고 돌아오니 여편네가 누워 있다. 저녁도 안 했는지, 아궁이도 방바닥도 싸늘하다. 숯은 아들 덕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장터에서 우리 부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세 살 난 아들이 이름난 장군이 될 거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흐뭇한 적이 있었나 싶다. 걷기 시작하면서 무거운 돌을 번쩍 들었다. 장작더미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손가락으로 튕기듯 집으로 날랐다. 아들 자랑하며 살맛이 났다. 산삼 구경도 못했지만 힘센 아들을 얻었다고 심마니 신씨도, 총 없이 한 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을 것이라고 포수 김씨도 부러워했다. 화전밭으로 입에 풀칠하는 우리 마을의 희망이다.
벌벌 떨던 마누라는 훌쩍이기만 한다. 그러고 보니 이불 보따리도 흩어져있고 방안이 엉망이다. 옆집 석이네가 우는 마누라가 걱정되었는지 찾아와, 포수 김씨와 포졸들이 들이닥쳤다고 알려준다. 아들이 동네의 자랑이라고 맞짱구치던 포수 김씨가 현감의 사냥을 따라다니다, 아기장수가 우리 마을에 있다고 했단다. 큰 힘을 가진 장수가 태어나 나라를 뒤엎을 거란 소문이 돌고 있었고, 임금은 그놈을 빨리 잡아들이라고 했단다. 산에 기대어 사는 산놈들만 몰랐다고, 어서 빨리 아들을 데리고 금강산으로라도 도망가란다. 자랑거리가 갑자기 걱정거리가 되었다. 아기장수가 태어난 마을은 주변 마을까지 모두 몰살시킨단다. 우리만 몰랐다. 이럴 수가 있나.
또 들이닥쳐 기어이 아들을 잡아갈 것이고, 우리 마을을 사냥터로 삼아 마을 사람을 사냥할 것이다. 우리가 떠나야 한다. 오대산이나 금강산으로 가면 포졸들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큰 산에는 큰 절이 있어, 양반들도 자주 머무니 위험하다. 이제 눈이 쌓일 것이다. 걸어가다 눈에 묻힐 것이다. 호랑이 밥이 되거나, 사람들에게 맞아 죽거나 매한가지로구나. 하늘로 솟거나 땅밑으로 꺼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 세 식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죽은 듯이 엎드려 살아야 하는 우리 같은 것들에겐 능력 있다는 것은 재앙이다. 눈에 띄면 위험하다.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모르고 못한다고 조아려 빌며 간신히 숨만 붙어살아야 한다. 힘자랑을 하지 말아야 했다. 금기를 어긴 것이다.
탄산과 쇠맛을 내는 개인약수는 장군약수로도 불렸다 한다. 아기장수 우투리와 비슷한 이야기가 서려있다. 크고 화려한 산꽃을 만나기 위해 개인약수에서 물맛을 보고 주억봉, 구룡덕봉의 방태산 능선을 지나 원점으로 내려오는 산행을 즐겨한다. 한니동에서 올라 용늪골을 지나 깃대봉 근처에서 머문 적도 있다. 장군약수 이야기는 용늪에 대한 전설로 인제문화원에서 펴낸 ‘인제의 옛이야기’에도 소개되어 있었다.
자식을 지킬 수 없었던 아픈 이야기와 때마침 능선에 부는 강풍은 어울렸다. 나아가려는 방향과 반대로 부는 바람에 발걸음이 느려지고, 고개는 더 땅쪽으로 향했다. 풀은 땅쪽으로 누워 꺾이지 않았고, 그 풀에 딱 붙은 곤충들도 덩달아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바람이 잠잠할 때는 쉽게 뛰어넘던 바위와 바위 사이도 느리게 기어 건넌다. 그러다 바위틈 그늘에 여리여리하게 핀 애기괭이밥이 보인다. 강한 바람이 아니었다면 지나쳤을 것이다. 심장을 거꾸로 세운 세 장의 잎이 붙어, 한 가족의 세 심장이 포개져 있듯이 접혀 있다. 아기의 충혈된 눈동자 같은 꽃잎 5장이 수술 10개, 암술 1개와 어울려 피었다. 봄이 되면 사라졌던 풀이 다시 솟아나, 바람을 곤충과 함께 견디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이어가는 자연의 시간을 상상하기 어려운 인간은 한순간만 보고 패배로 기록했지만, 자연은 끊임없이 도전하며 이어가고 있었다. 애기괭이밥이 나에게 아기장수는 또 태어날 것이고, 그때는 함께 지키자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