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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대로 May 10. 2024

20년 산행에서 처음 본   소백산
백작약

  영주시 풍기읍에서 가는 희방폭포길은 4월에 모데미풀꽃을 만나러 가는 길이고, 국망봉의 입산통제가 해제되는 5월부터 겨울까지는 초암사길과 어의곡길을 주로 간다. 이 두 곳은 모두 원점회귀가 가능하고, 대규모 산객무리들을 피할 수 있어 좋다. 그들 사이에 끼거나 뒤쳐지면,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길은 주차장이 좁아 그런지 비교적 덜 온다. 특히 초암사길은 더욱 호젓하다. 둘 다 계곡이 있어 산꽃과 눈 마주치면서 가기도 좋다. 


  오늘 꽃산행은 추억을 더듬으며 기대하는 꽃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조금 이른 것 같아 걱정을 하며 오른다. 지난 산행에서 발끝이 아파 고생했다. 그래서 신발깔창을 갈았다. 발등이 낮은 나는 산길에서 발끝통증으로 고생한다. 무릎이 덜 아프니 다행으로 여기며, 발통증을 다스리려 등산화, 깔창, 등산양말 등에 애를 쓴다. 어의곡 삼거리에 닿기 전에 쉬며 힘겨움을 달래고, 국망봉 능선에서 점심을 먹으려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르는 무리들이 제법 많다. 매번 소백산 철쭉제를 피해서 5월 초에 올랐는데, 이번은 영주시에서 산의 진달래가 다 지기도 전부터 철쭉제를 한 달 가까이로 잡아, 축제로 온 산객들을 피하지 못했다. 주차장은 도로 1km까지 내려서까지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도 대부분의 산객들은 정상 비로봉을 향할 것이고, 우리는 국망봉에서 늦은맥이재의 백두대간을 걸을 것이다. 이 능선에서 오늘 목표하는 꽃을 만날 수 있다. 매주 오르는 산행은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려주는 체력검사다. 지난주는 감기로 힘겨워서인지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일단 물로 갈증을 달래지만, 허기를 달래지는 못한다. 더 느리게 올라 첫 번째 목표한 쉼터에서 사과를 베어 물었다. 

 

  쉼터 아래로 희끗희끗한 것이 보인다. 저렇게 큰 것이 뭘까? 베어 물던 사과를 내려놓고, 눈이 가는 쪽으로 가려니 발걸음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다. 낙엽과 나뭇가지 사이의 틈으로 다시 보니 못 보던 크기다. 식물도감에서나 보던 꽃을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꽃을 보니, 쌓인 시름이 사라진다. 세상을 두 발로 버티며,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어찌 없겠는가? 그 순간마다 위로해 줄 사람을 찾긴 어렵다. 찾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설명할 여유가 없고, 시시때때로 바뀌는 아픔을 설명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이런 순간, 조화로운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꽃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 된다. 

 

  20년 동안 산을 찾아다녔지만, 이 꽃은 처음이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다. 백작약이다. 꽃잎이 덜 핀 듯 오므린 모습이 오히려 활짝 핀 것이다. 이것은 수술 끝에 매달린 노란 꽃밥이 부서져 흩날리는  모습으로 알 수 있다. 6장의 오므린 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라는 도란형(倒卵形)이다. 향을 느끼려 코를 갖다 대니, 흰 꽃잎에 달라붙은 곤충들이 먼저 봄맞이하고 있었다. 튼튼한 뿌리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줏빛 새 잎을 기운차게 밀어 올려 가지 끝에 꽃봉오리를 매달았을 것이다. 매해 봄마다 새 줄기를 밀어 올려 풀이 나무보다 더 기운차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대하지 않았던 꽃을 만나면, 아낌없이 주는 산에게 나는 오늘도 빚졌다는 감동을 느낀다. 순간순간 계산하던 내 습관이 초라해진다. 피하는 삶보다 부딪히면서 살아갈 용기 한 숟가락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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