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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대로 May 24. 2024

순흥골 소백산에서 만난 덴동어미 같은 나도옥잠화


  동창모임 약속일이 다가오면, 안 입던 옷도 꺼내 입고 안 하던 화장도 해본다. 이렇게 안 하던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돋보이려기보다 뒤처지기 싫어서다. 함께 한 추억은 희미해져, 현재의 모습으로 삶이 정리되는 것 같아, 초라하게 보일까 신경 쓰인다. 그러나 이야기가 이어지면, 겉치레보다 내면이 보인다. 서로의 상황은 엇비슷하고, 삶의 고난을 피해 갈 재주가 없기는 피장파장이다.


  자기 아픔에 갇힌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아 대화할 수 없고, 만나도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기 꺼리는 사람과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공감은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다른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느낄 때 일어난다. 상처 드러내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 상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다리가 된다. 소백산대관록에 실린 화전가는 조선 후기에 네 명의 남편을 모두 사별한 후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덴동어미의 삶이 담긴 노래로 덴동어미화전가로 더 알려졌다. 자기 상처를 담담하게 드러내어, 봄날에 모인 여인들이 모두 위로받는 따뜻한 잔치로 이끈다. 꽃을 봐도 새소리를 들어도 밝은 달을 봐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어 슬프다는 어린 과부에게 자기 슬픔에 갇히지 말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 고통도 물 흐르듯 흘려보낼 수 있다는 깨달음도 덧붙인다. 이 말을 듣고 어린 과부와 모인 여인은 맺힌 것을 풀고,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며 봄꽃놀이를 즐긴다. 아픔을 승화시킨 멋진 여인 덴동어미는 순흥골이 고향인 여인이었다.


  산에서 만나는 산꽃도 덴동어미처럼 건네는 위로가 깊고, 공감의 너른 품을 느낄 수 있는 꽃이 있다. 그 꽃이 나도옥잠화이다. 이 꽃은 높은 산의 반음지에 드물게 핀다. 산 능선의 이끼 낀 바위 위나 큰 나무 뒤편에 연두색의 넓은 잎이 땅에서부터 풍성하게 겹쳐 올라와 자리 잡은 2~3 송이가 보였다. 5월 첫 주인 3주 전에는 아직 꽃대가 자리 잡지 않아, 풍성한 잎만 보고 내려왔었다. 그래도 국망봉 능선에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비봉산 자락의 순흥읍내리벽화고분을 지나 순흥저수지 주변에 멋진 카페가 새로 생겨 관심이 갔지만, 마음은 이미 국망봉 자락에 닿아있었기에, 곧바로 초암사 주차장을 향했다. 초암사 주차장에서 국망봉 능선을 거닐며, 비로봉을 거쳐 달밭골로 내려오는 원점회귀의 산행이다. 산꽃은 비로봉 쪽보다는 국망봉 능선에 더 많기에, 내 마음의 정상은 국망봉이다. 정상 주변은 사람이 많기에 한적함을 즐기는 산꽃 산행은 정상을 스쳐 지나며 길을 잡는다. 죽계계곡을 지나 봉두암의 맑은 샘물로 갈증을 달랜 후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귀여운 돼지바위를 보고 오르면 국망봉 능선에 이른다. 3주 전에 봤던 나도옥잠화가 드디어 폈다. 긴 꽃대가 유연하게 휘었고, 그 끝에 2~6개의 흰 꽃이 어긋나게 자리 잡고 소박하게 피었다. 6장 꽃잎의 모서리진 끝을 살짝 들어 올린 모습이 작은 백합이다. 암술 1개가 삐져나와 있고, 수술 6개가 암술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흰 꽃은 너른 연두색 잎에 비해 작지만 또렷하다. 30cm가 넘는 꽃대가 유연하게 휘어진 모습은 여유롭다.


  겹친 큰 꽃들을 버티느라 꽃대가 땅 쪽으로 고개 숙이며 휘어진 비비추와 달리, 나도옥잠화의 꽃대 허리춤은 휘어져 경쾌하고 머리는 상쾌하고 가볍다. 넓은 잎의 옆구리에서 밀어 올린 꽃대에 흰 종모양으로 끝이 6갈래로 갈라져 피는 은방울꽃은 코를 꽃과 맞닿을 듯이 다가가야 제 모습을 볼 수 있어, 충분히 감상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나도옥잠화는 생존 조건이 좀 더 까다롭지만 감상하기는 수월하다. 높은 산 능선의 인적이 드문 반음지에 자리를 잡아 뜨거운 해를 피했다. 연두색의 풍성한 너른 잎이 반사판이 되어. 휘어진 꽃대에 매달린 흰 꽃을 우아하게 비춘다. 반사판까지 있으니 사진 찍기도 쉽고, 반음지라  꽃 주변에서 놀기도 좋다.

 

 사진 찍고 점심도 먹고 실컷 놀며 내려오니, 올라가며 만났던 큰꽃으아리와 길가에 탐스럽게 자리 잡은 민백미꽃이 기다리고 있었다. 봄과 여름이 겹쳐 풍성한 꽃산행 마친 후 먹는 저녁은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게 된다. 간식과 점심 도시락을 충분히 먹었지만, 내려오면 또 배고프다. 소백산 주변에서 이것저것을 먹어 봤지만 풍기역 주변의 청국장이 최고였다. 택시기사님이 알려준 허름한 노포가 신선한 나물 반찬을 곁들여 먹을 수 있어서 특히 더 맛있다. 청국장이 특히 맛있는 이유는 영주의 명품 토종 품종인 부석태 때문이다. 다른 콩보다 두 배가 큰 이 콩으로 만든 청국장찌개는 풍성하게 산행을 마무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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