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에서 중청
1. 내 마음의 정상석, 범꼬리
“여기는 누구나 힘들어.”
“나 설악 4번째인데도 그래. ”
“그치"
“뒤로 돌아와. 여기가 마지막 데크야.”
“진작 말해 주지. 알바시키네. 알바비 줘야 해.”
“맛있는 간식 줄게. 여기서 뭐 좀 먹고 가.”
높은 산은 앞에서 격려하며 당겨주고, 뒤에서 발걸음을 멈춰 무리하지 않게 조절해 주는 일행을 따라 오른다. 처음 가는 산은 다 그렇다. 어디서 쉬며 물을 마실까? 무얼 먹으면 지치지 않을까?를 스스로 계속 물으며, 끊임없이 갈등한다. 미리 지나치지 않게 조금씩 챙기는 것이 핵심인데, 놓치기 쉽다. 대청봉에 오르면 흩어질 사람들이지만 정상에 가기 전까지는 다른 길도 없으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주 만난다.
오색에서 오를 때는 설악폭포 주변 계곡 물맛을 기억하며 오른다. 여기쯤에서 된비알이 누그러지고 본격적으로 꽃을 만난다. 주변은 이미 환해지고 계곡물소리에도 흘린 땀만큼 오싹해 겉옷을 챙겨 입는다. 수통을 열어 물부터 받는다. 한 모금 들이켜니 시원하다. 초반에 갈증을 많이 느끼는 나는 한 모금 더 마시는 것으로 달랜다. 이제 여유를 갖고 도시락을 연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먹는 것에 신경을 더 쓴다. 날이 더우니 김밥 말고 떡을 챙기는데, 떡이 예전 그 맛이 아니다. 엉터리 쑥절편을 먼저 먹어서 먹이가 꼬였다는 핀잔에 나도 자꾸 물을 들이켰다.
“일출을 못 보겠네.”
“정상석에 줄도 엄청 길겠지? 더 서둘렀어야 했네.”
“26년도엔 케이블카가 생긴다잖아. 그땐 밤 12시에 출발하지 않아도 편하게 오겠네.”
“아직 삽도 안 떴는데? 그렇게나 빨리 생겨?”
산을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산을 몇 번씩 다녀갔고, 정상을 몇 시에 도착해서 인증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족하고 즐기는 것은 숫자로 드러내면 한없이 빈약하다. 결과만 남는다면 과정은 모두 고생일 뿐이다. 과정을 음미하려면, 자기 속도로 올라야 한다. 하루라는 시간 때문에 머리불을 밝히고 새벽에 오르지만, 내 발이 닿기 전에 지팡이로 먼저 선점하려는 조급함으로 오르기는 싫다. 설악폭포를 지난 이제는 대청봉에 이르기까지 만날 꽃이 많다. 대청봉에서 만나 각자 발견한 꽃을 정상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산객들의 무리에서 찾지 않는다. 편안한 산행이다.
요강나물 꽃을 묻는 외국인에게 어려운 이름 대신에 검은 벨벳같이 생긴 꽃이라 답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꽃봉오리의 모습은 시커먼 털뭉치 같다. 그 털뭉치가 종모양으로 고개를 숙인 채, 네 갈래로 갈라진 후 끝을 말아 올려 할미꽃 모양이 된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꽃이다. 엎드려 두루미꽃 무리들을 찍느라 숨이 찬다. 그래도 이렇게 무리 진 두루미꽃은 여기에 와야 볼 수 있다. 주름진 넓은 잎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조명판처럼 아래에서 꽃을 비춘다. 동그랗게 뒤로 말린 흰 꽃사개잎 위로 튀어나온 수술과 암술이 작아도 자유로운 기세를 뻗고 있다.
처음부터 도착하려는 정상이지만, 막상 도착하면 머물러 할 것이 없다. 겨울에는 바람 불어 춥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곳이 없다. 그래서 정상은 점찍고 내려오는 곳이다. 그 점을 찍으려고 정상석 앞에서 긴 줄을 서는 것일 것이다. 그 상징적인 정상석이 계절마다 바뀐다면 멋지지 않을까? 그래서 이맘때 내 마음의 정상석은 꼭대기의 바람 따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범꼬리이다. 긴 줄기 끝에 연분홍의 꽃이 촘촘하게 맺힌 꼬리를 바람 따라 흔들며 토닥여주는 몸짓에 피로가 풀린다.
2. 산동무가 준 선물, 복주머니란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겹다. 산행의 피로와 내 무게까지 더해져 그럴 것이다. 이 피로를 보충하기 위해 요기를 하는 곳은 중청대피소였다. 추억이 담긴 이 중청대피소를 허물고 있다. 대피소는 없애고 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온 손님들을 위한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는 말을 지나는 산객이 전한다. 그러고 보니 설악산을 오르는 산객들의 차림새도 많이 달라졌다. 산길을 오래 걸으려는 차림새가 아니다. 잠시 오르고 빨리 내려가려는 가벼운 모습이다. 하지만 중청대피소는 그동안 오른 산길에 대한 산객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었다. 백담사로 이어지는 암자길, 12선녀탕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길, 요즘 너무나 붐비는 공룡능선길을 가기 위한 산객들의 집합소였으니까. 다음날 갈 길을 상상하며 쪽잠을 자다가, 잠깐 눈 떠 대청봉에 뜬 달을 보며 놀라고, 또 잠깐 잔 후 대청봉에 구름이 넘지 못하는 모습에 놀라던 곳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철거하는 중청대피소를 지났다. 대청봉의 긴 줄이 실어서 바로 소청으로 간다는 산객들을 만났다.
“대청봉 지나왔나요? 사람 많지요?
“네, 대청에서 다들 공룡 간다더군요.”
“케이블카가 생기면 더 빠르겠죠?”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돈 좀 번다고 기대가 대단하던데.”
“산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많아서 산길을 계속 정비하던데.”
“산은 엉망 되는 거지요. 뭐 요즘은 그것도 신통치 않은 것 같던데”
“빨리 온 사람은 빨리 가기에,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건 동계 올림픽으로 증명되었잖아요.”
산은 목적지를 향해 빨리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빌딩이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마주하는 자연에서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하며 놀라고 감동을 받는 곳이다. 소금 간이 세고 좋지 않은 기름으로 범벅인 된 절편에서 꼬인 먹이를 사과 2개와 삶은 계란으로 개운하게 만회하고자 자리를 폈다. 사과를 베어 물다가 산동무는 다른 산객들은 뭐 먹고 다니나를 살피려 갔다. 부산스러운 주의력이 본인의 취향이려니 하고 먹던 사과나 열심히 씹으며 산 바람의 상쾌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빨리 카메라 챙겨 와. 내 것도.”
다급하게 긴 말없이 부르기에 군말 없이 먹던 사과를 던져놓고 부르는 곳으로 갔다.
“어디쯤이야?”
“더 가. 위만 보지 말고. 아래로"
“어머 저게 뭐야? 민둥인가목이 떨어진 거야? 아니 서 서얼 마?”
“맞아. 그거야! 내가 내려가면 사라질 것 같아서 아무 말 못 하고 부른 거야?”
분홍색의 입술꽃잎은 복주머니 같다. 위쪽 꽃받침은 모자같이 복주머니를 덥고 양옆의 꽃받침은 팔을 벌린 모습이다. 귀여운 만화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복주머니란이다. 이 꽃은 식물도감에서나 봤다. 이 꽃을 보기 위해서는 수목원에나 가야 하나 했었다. 자연스럽게 만날 수 없다고 여길 만큼 귀한 꽃이기에. 사진을 찍고 먹던 도시락을 먹고 다시 가보자고 했다. 사라졌을까봐. 이번에 보고 난 후엔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더 보고 가자고 했다. 그때 다른 산객이 지나며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아무 말하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마구 알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리곤 지나가는 그분들이 그 꽃을 보는지 안 보는지 쳐다봤다. 그냥 지나쳤다. 역시 산은 가다가 자주 뒤돌아 봐야 한다. 그 꽃을 보고 산동무는 소리 지르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한참을 걸어서 다시 자리 잡고 사진을 보면서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어쩌자고 산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다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산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