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주워온 자식, 딸

by 뚜벅뚜벅

외갓집 막내 오빠가 대입 시험을 칠 때, 외숙모는 오빠의 어릴 적 배냇저고리를 외투 안에 기워 입혔다. 배냇저고리가 붙은 외투를 다리미로 다린 후 옷걸이에 걸어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색달라 보였다. 태어나 처음 입었던 옷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 것으로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가 느껴졌다. 젖 먹던 힘까지 내라는 마음을 담은 의식으로 그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내 배냇저고리도 있으려니 기대했지만, 내 것은 없었다. 선녀가 날개옷을 잃어버린 것처럼 있어야 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1970~80년대에는 갈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는 명절에 만나는 친척 집이었다. 설날에 새 옷을 입고, 언니 오빠를 만날 생각을 하면 무척 설렜다. 이런 나와는 달리 그들은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밥 먹다가도 엉덩이를 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숟가락을 놓고 따라나섰다. 몇 번 놀아주다가는 떼내버리려 애를 섰다. 그때마다 단골 메뉴는 놀리기였다.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것을 똑똑히 봤다. 지금도 언양 깐창 다리 밑에 가면 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보라고. 그러면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아니라고 악을 악을 썼다. 대충 놀렸는데 필사적으로 달려드니 그들은 재미있었을 것이다. 막내 오빠가 한 장난이 외삼촌한테까지 번졌다. 대여섯 살 아이가 놀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반응하니까 외갓집에 모인 어른들은 한 편이 되어서 말을 거들었다. 어젯밤에도 우리 영아 왔냐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와서 묻고 갔다느니. 말을 보탰다. 이미 나는 주워온 자식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하느라 언니 오빠들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혼자 씩씩 거리며 싸웠다. 싸우지 않으면 다리 밑으로 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웃겨 죽겠다는 어른들의 모습과 혼자 울부짖는 아이의 모습은 참 대조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 아이의 마음에는 무엇이 쌓였을까?

프로스펙스와 스펙스 신발은 같은 회사에서 나온 신발이지만 파는 곳이 달랐다. 나이키 운동화는 시골에서 보기도 힘들었으니, 최고의 운동화는 프로스펙스였다. 시장의 신발가게에서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스펙스와 달리 프로스펙스는 전문 대리점의 선반에 전시되어 있었고, 종이 상자에 넣어서 팔았다. 작대기가 하나만 그려진 것과 작대기가 두 개가 그려진 것은 계급장처럼 신분이 달랐다. 학교에서는 나이키를 신은 최고 계급과 그들과 어울릴 정도가 되는 계급은 프로스펙스까지였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동생에게는 해가 되었다. 동네 깡패들의 표적이 되어서 신발과 잠바까지 빼앗기는 고통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그 신발들을 자꾸 사줬다고 하신다. 아예 거꾸로 기억하며 말씀하신다.

신발과 달리 솜 잠바는 무척 부끄러웠다. 빨기 전에는 빵빵하다가 빨고 나면 바로 납작해지는 솜 잠바와 달리 따뜻한 방바닥에서 손으로 톡톡 치면 부풀어 오르는 남동생의 오리털 패딩이 부러웠다. 남동생의 패딩은 빌려 입을 수 없어서, 아버지의 패딩을 훔쳐 입었다. 그것도 대학 때. 아버지의 옷을 훔쳐 입었지만 가볍고 납작해지지 않는 패딩은 겨울도 봄처럼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바로 뺏기고 말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스스로 예쁘다고 느낀 적이 없다. 20대 사진을 보면 그리 빠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 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잘 웃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에서이다. 편안한 사람이 아니고는 잘 웃지 못한다. 어색한 자리를 피하려 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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