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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대로 Aug 28. 2024

다섯 번째 - 익숙한 더위처럼 불편함에 머물며

    휘감는 습기와 끈적거리는 더위가 오히려 익숙했던가? 서늘한 바람에 놀라서 하늘을 쳐다본다. 가을이다. 어제와 다른 서늘한 바람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것처럼 어색하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서늘함을 시원함으로 느끼지 못하는 나는, 옥죄는 불편함이 익숙하다. 편안하면 불안하다. 일이 술술 풀리면 어떤 일이 닥치려고 이러나 하고 또 불안해지는 것처럼. 불안하면 일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어린 내가 집안 걱정을 처음 한 것은 부모님이 계모임으로 늦을 때, 교통사고가 나서 두 분이 돌아가시면 내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끊임없는 걱정으로 웃지 못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예뻤다. 코도 오뚝하고 날씬한 엄마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고2 때 학년부장 선생님이 학부모 모임 때 엄마를 만난 후 “너는 어째 너희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니?”라고 물었다. 그땐 그 말을 ‘너는 엄마 안 닮아서 못생겼냐는 말’로 듣고 무척 속상했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아마 아버지를 닮은 내 모습이 엄마는 싫었던 것 같다. 바깥일에만 바쁜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으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춘기 동안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여긴 나는, 참 불쌍하고 못난 아이였다. 장래 희망도 딱히 없고 집안의 기대도 없었기에, 중학교까지 학교만 꼬박꼬박 다녔다. 그러나 성적이 낮으면 내 인생은 여기서 끝장이란 생각이 드니, 고등학교부터는 학교 시험 성적에 신경을 썼다. 기초가 없으니 성적이 높은 친구들에게 매달렸다. 그들도 내가 끈덕지게 매달려서 더 부지런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사촌들과 두 동생은 가지 못한 4년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수재들이 다니는 유명한 대학도 아닌 사립대학을 다녀서 나는 부끄러웠다. 아들들이 누려야 할 것을 못난 내가 누리게 된 모양새였다. 그래서 졸업 후 바로 취업을 못해서 또 더 부끄러웠다. 친척들이 집에 오면 숨어 있었다. 이런 나에 대하여 뭐라 할까 봐. 어릴 때 제사 지내러 큰집에 갔을 때, 잠자다가 내 성적을 뻥튀기하며 자랑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했었고, 그것이 채찍이 되어 친정에 자꾸 뭐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에서 풀려나지 못했다.


  전화벨이 울린다. 화면에 친정 식구의 이름이 뜬다. 한순간 내 머리는 멈춘다. 그냥 모른 척하고 싶다. 핸드폰을 엎어 둔다. 오래 울리다 벨 소리는 끊긴다. 그 순간부터는 몇 번 더 올까 걱정이고, 남편과 딸에게 전화할 것을 예상하니 괴롭다. 그래도 오늘은 받고 싶지 않다. 갚아지지 않는 빚독촉에 시달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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