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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대로 Aug 21. 2024

네 번째- 착한 딸의 두 얼굴

  색다른 여행지를 가거나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때는 혼자만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슷한 곳에 친정 부모를 모시고 가거나 용돈이라도 보내야 마음이 편했다. 즐겁거나 기쁘면 나는 왜 불편하고 미안할까? 그때는 이 죄책감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부모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는 격려도 받았기에, 이런 자신에 대한 만족감도 컸다. 작은 관심이라도 표현할 부모님이 계시고, 이런 마음을 드러내도록 도와주는 남편과 딸이 고마웠다. 그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자주 싸웠다. 싸운 후 두 분은 화해하지 못했다. 남은 화를 자식들에게 풀었다. 어릴 때는 엄마의 짜증과 잔소리에 마음을 졸였고, 커서는 아버지의 신세한탄에 휘둘렸다. 엄마는 마음을 설명하는 말 대신 아버지를 들볶은 후, 처지를 비관하는 신세한탄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불편할 때 쏟아내는 짜증은 엄마의 이런 모습과 닮았다. 남편에게 큰소리로 화내는 모습은 늙은 엄마가 힘없는 아버지에게 짜증을 퍼붓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런 모습을 왜 그대로 되풀이하는지, 부끄럽고 초라하다. 무엇 때문에 내가 불안하고 불편한 지는 말하지 못하고, 헐뜯을 꼬투리만 잡아서 반복적으로 고함치는 모습은, 분명 마음이 많이 아픈 모습이다.

  가족 나들이를 떠날 때 흥분한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다. “어허. 참내. 아이들은 웃다가 우는 일이 꼭 터지지.”라며 들떠서 이렇게 놀자 저렇게 놀자를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아버지는 불길한 사고가 터질 수 있으니 조용하라고 했다. 기뻐도 힘들어도 조용히 혼자 견디는 것이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지내야 했다. 집에 와서는. 서로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눈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와 동생들은 함께 한 추억이 없다. 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있지만, 동생들과 고민을 나눈 적이 없다. 동생의 짜증을 듣기는 했지만, 내 걱정을 말한 적은 없다. 나는 친정 식구들과 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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