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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신애 Jan 29. 2024

점심에 라면 먹은 11살 소년 이야기

응급실


  새벽 두 시, 초등학생이 할머니 손잡고 소아 응급실에 내원했다. 나는 접수 멘트인 ‘응급실이라 진료비가 9만 원부터 발생할 거고요 보호자분은 목걸이 메시고 왼편에서 진료대기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9만 원이라는 말에 할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손자에게 오늘은 참았다가 내일 동네병원 가자고 설득을 했다. 근데 그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었고 아픈 걸 참다 참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얼른 공단 자격조회를 해봤고, 의료급여 수급권자임을 확인했다. 수급권자이면 응급실이어도 비용이 그 정도는 안 나오니 할머니를 설득했다.

‘어르신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비용이 있어서 9만 원 까지는 안 나올 거예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치료는 받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ㅠㅠ?’ 내 다정함을 최대한 끌어올려 말을 했다. 옆에 있는 사수 선생님도 함께 5분 정도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다행히 할머니는 접수를 하고 그 소년은 진료를 보고 치료를 받았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나고 한층 나아진 얼굴로 나온 소년과, 피곤해 보이는 할머니가 수납하러 왔었다. 금액을 조회할 때 속으로 ‘제발 비급여항목이 없길.. 제발 조금만 나와라 했는데’ 다행히 걱정한 만큼 나오지 않아서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수납을 할 때 나는

‘친구야 스트레스받으면 운동을 해보렴.. 내가 너무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야채위주로 먹고 평소에 물을 많이 먹어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 해 ‘

생각이 들었지만 오지랖이라는 걸 알아서 ’ 아프지 말고 다시는 여기 오지 마~ 조심히가~‘라고만 말했다.


  그 아이의 진단명은 위경련이었다. 저녁에 먹은 라면과 소시지가 위에 부담이 되었나, 아니면 그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나도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가본 적이 있는데 장이 뒤틀리는 것 같이 아프던데 그 아이는 어떻게 새벽까지 참았을까 싶어 괜스레 눈물이 났다. 할머니도 얼마나 놀라셨을까 재정이 어려워 손자가 치료받는걸 주춤해야 하는 현실이 마음에 사무칠 것 같았다. 할머니의 흔들렸던 눈동자에는 손자에 대한 사랑도 같이 보였는데..


  나는 그 아이가 안 아팠으면 좋겠다. 아니, 아픈 걸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아이가 건강하길 바라는 기도밖에 없음을 느끼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슬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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