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수가 되어 알게 된 것들
시험관 주사와 약의 대표적인 부작용.
두통, 복부팽만, 체중증가, 무기력
나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해당되는 것들이었고,
이 부작용들은 지난 8차 시험관까지 늘 따라붙었다.
그래서 과배란 기간을 떠올리면,
항상 '두려움'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압도했다.
이건 남편의 도움과는 상관없이
결국 혼자 버텨야 하는 증상들이었으니까.
9차 시험관을 앞두고도 똑같았다.
'또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서 많이 힘들겠지..?'
그렇게 한 달을 쉬고 다시 시작했는데,
이번 과배란은 이상하게도 부작용이 멀게 느껴지는 주기였다.
왜 그랬을까.
시험관을 여러 번 해서
몸이 결국 적응해 버린 것일까,
그래서 이제는 견딜 줄 아는 몸이 된 걸까.
아니면 고차수가 되면서
'될 대로 돼라.. 언젠간 되겠지.'
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커진 걸까.
늘 전두엽을 조이던 두통은 훨씬 덜했고,
복부팽만도 '아 이건 원래 오는 거지' 하며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체중도 예전처럼 한 번에 3kg씩 오르는 대신
이번에는 1kg 정도만 늘었다.
이것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난자 채취 후엔 빠질 거니까.
지난 경험이 나의 불안을 잠재웠다.
그리고 제일 큰 변화는
무기력함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
예전에는 '왜 이렇게 늘어지지...' 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지금은
'뭐.. 좀 무기력하면 어때? 이것도 한 때인데.'
하는 마음이 든다.
쉬는 법을 몰랐던 과거의 나와 달리,
이제는 '좀 널브러져 있어도 돼.'라고
이런 나 스스로를 허락하게 된 것 같다.
견딜 줄 아는 몸이 된 걸까,
내려놓은 마음이 된 걸까.
하나하나 곱씹어 보니,
둘 다 나였다.
몸도 변했고, 마음도 변했다.
그리고 결국,
시험관이라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나'가 변해 있었다.
이제는 시험관 시술에, 증상들에
나의 하루를 집중하며 기대지 않는다.
모든 일상의 초점을 그쪽으로만 쏟아붓고
흔들리던 예전의 나는,
지금은 조금씩 나에게 돌아오는 중이다.
그 신호가 나에게 이런 질문으로 다가왔던 듯싶다.
견딜 줄 아는 몸이 된 걸까,
내려놓은 마음이 된 걸까.
임신을 위한 노력들이 가져다준
'내려놓음'의 형태가 어떤 모습인지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다.
난임으로 맞닥뜨린 긴 고난이
결국 내게 남겨준 선물
'내려놓음'
원치 않게 하게 된 일들도 결국 배울 점이 있다.
고난의 과정을 오롯이 겪고 배우고 있으니
삼신할머니가 이제 선물을 주셔야겠지.
보고 계십니까? 삼신할머니.
오늘도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조금은 더 성숙해졌을 거라 믿는다.
시험관 고차수 30대 여성의 여러 생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