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어올리던 스윙과 놓쳐온 시간들

아이언샷을 통해 배우는 삶의 리듬

by Nomad Inn

아이언샷이 잘 맞는다고 믿어온 시간이 있었다. 티 위에서, 매트 위에서는 그랬다. 파3 티샷처럼 바닥이 단단하고 라이가 좋은 곳에선 공이 쭉쭉 뻗어나갔다. 나름대로 뿌듯했다. ‘이젠 좀 치는구나’ 싶은 자만도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정작 필드에서는, 특히 잔디가 불규칙하고 경사가 많은 한국 골프장에서는 공이 터지고, 당황하고, 연습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는 ‘걷어올리는 스윙’을 하고 있었다. 공을 아래에서 퍼올리는 그 습관은, 매트 위에서는 용서받았지만 잔디가 거칠고 페어웨이 바깥의 러프에선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드라이버가 흔들릴 때, 공은 어김없이 페어웨이를 벗어나 러프에 빠졌고 더더욱 '찍어치는’ 다운블로우 샷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잔디를 파고들며, 앞 디봇을 만들 수 있는 강한 임팩트. 그게 없으면 볼은 뜨지도, 나가지도 않았다.


오늘 연습장에서는 그 생각을 곱씹으며 테이크백에서부터 팔로우까지 동작을 다시 다듬었다. 척추각과 일치하도록 헤드를 끌어오고, 손목을 억제하고 클럽을 길게 밀어내며 끊어치는 느낌을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오래전 초보 시절의 레슨프로가 해줬던 말과 동작들이 떠올랐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쳐야 하는지, 왜 그렇게 땅을 치는 핸드퍼스트의 동작을 요구하는지 이해하지 못한채, 독학골프를 이어나갔다.


이제서야 안다. 그 동작들이 모두 ‘다운블로우’를 위한 씨앗이었음을. 그때는 내가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기술은 머리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몸에 배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서야 깨닫곤 한다. 골프뿐만 아니다. 나는 늘 늦게 안다. 늘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이라는 후회를 안고 산다.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지금처럼만 이해하고, 지금처럼만 표현했더라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까. 좀 더 부드럽게, 좀 더 따뜻하게 나를 던졌더라면 지금쯤 더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뒤늦은 깨달음이 서럽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 상황에서는 그 이상 할 수 없었다고 조금은 나를 용서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따금 부질없는 바람이 스친다. "남들처럼, 그냥 평탄하게 흘러갈 수는 없었을까."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알고 있으니 이제는 '걷어올리는’ 삶이 아니라 ‘파고드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땅을 강하게 디디고, 공을 정확히 눌러치는 스윙처럼

내 삶도 그렇게 뚫고 나아가고 싶다. 샷은 실수했지만, 스윙은 배웠다.


삶은 흔들렸지만,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그래도, 다시 골프장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