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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마 Aug 26. 2024

얼굴

“각인” 전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누워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점심때가 지나갔고, 햇빛이 깊고 비스듬해져서 이부자리 발치에 걸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저 빛이 바닥으로 떨어져 마침내 발코니 바깥으로 기어 사라질 때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서둘러졌다.

집안은 그렇게나 적막했는데 거리는 사람들 소리로 붐볐다. 자동차 소리, 오가는 발기척, 두런두런 중간에 까르르 웃음도. 활기. 그렇다. 활기가 있었다. 나는 표정 없이 매달려 있는 눈과 코와 입과 볼근육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그 활기라는 것을 띄어 보았다. 지금 나를 스치는 사람에게 난 어떻게 보일까? 이 활기 도는 표정이 자연스러울까? 어색할까? 아니다. 그들은 날 보지 않는다. 보아도 알아챌 만한 아무것이 없다. 그럼 됐지 뭐. 그걸로 충분하지. 하늘을 봐야지. 저렇게 높구나. 나무를 봐야지. 가을이 물을 들이기 시작했어. 바람은 가을의 붓이야. 들어 올린 시선 끝에 눈에 들어온 것이 각인전 홍보 현수막이었다. 어디 마땅히 들어가고 싶은 커피숍도 없었다. ‘저기나 가볼까.’ 그때 목적지가 생겼다. 걸어서 2km쯤 되려나. 그 목적지엔 무슨 목적이 있단 말인가. 있을 게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내 발걸음에 힘이 생겼다. 난 갈 곳이 있다고. 좀 의기양양해졌던 것 같다. 그때의 내 얼굴은 어땠을까?


 


전에 자료실에 앉아 있는데 형형한 안광을 뿜으며 들어와 내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카드 외판원. 50대 중후반의 그는 내게 자기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필요하지 않습니다.”하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웃어 보였다. ‘아무 악의가 없어요.’ 그는 나가며 내게 선물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부자가 될 상이세요.”


그의 직관이었을 거다. 내 눈이 부엉이 상인지 뱁새 상인지, 눈꼬리에 점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볼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순간이었고 거리도 멀었다. 그가 본 것은 내 얼굴이었다기보다 거기 떠오른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를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나는 여전히 부자가 될 상일까.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그때 그 카드외판원을 맞았던 편의 표정으로 각인전에 가까워졌다. 그건 분명하다. 가고 싶은 곳에 다가가는 나는 그런 표정이다. 여러 판화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폴더폰만큼 허리를 깊게 숙인 어느 노동자의 인사, 거대한 어둠의 숲 앞에 선 작디작은 한 사람, 그리고... 무얼 보거나 읽거나 찾아가거나 만나거나 나는 전체적 맥락보다는 인상적인 한 장면을 주로 기억한다. 각인전에서도 한 장면이 주로 기억난다. 커다란 얼굴 그림. 세필로 밑그림을 그렸을까. 가느다란 침으로 수없이 그어 면을 만든 듯한 판화 얼굴. 주름이 가득한 시골 할머니들의 얼굴. 한눈에 보아도 누적된 햇빛의 양이 어떠할지, 집어삼킨 눈물과 설움이 얼마일지,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건넨 ‘곱다’는 한 마디에 세상 얻은 듯 웃으리란 것들을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얼마만큼 들여다보아야 이렇게나 가느다란 선을 이토록 수없이 긋고 그걸로 이런 얼굴과 표정과 감정을 표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를 이렇게 들여다보았나? 심지어 내 얼굴조차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저 익숙한 구석에 익숙한 자세로 웅크리고 누워 익숙한 어둠을 (때로 꿈꾸던 빛을) 보고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익숙한 감상에 빠진다. 그러느라 여가가 없는 지경 아닌가. 일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이야기할 때나 잘 때나 나는 대체 뭘 들여다 보고 있는 건가. 종종 그날의 그 생각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다시 익숙한 자세로 익숙한 어둠을 보며 잠기면 그 기억이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남의 기억을 읽을 때처럼 아득해지곤 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새삼 낯설어지지 않을까? 그럴수록 더 자주 들여다보면 그제야 익숙해질까. 아기가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는 것이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머리맡에서 하염없이 보는 것이 그럴까. 내 얼굴조차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나는 도대체 무얼 사랑하고 있을까.


 


네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자세히 들여다볼게. 종종 습관으로 돌아가 어둠 쪽으로 등돌리고 웅크리겠지만 가능한 한 자주 너를 너희를 들여다볼게. 그 얼굴을 기억할게. 눈이든 코든 입이든 볼이든 더듬이든 잎이든 부스러기든 숨결이든 떨림이든 온기든 무엇이든 들여다볼게. 얼굴을 찾아서 알아볼게. 그럼 나 다시 부자될 관상이 될 수 있을까? 누워있는 내가 햇빛이 발치에 걸리기 전에 아무 목적지로나 번쩍 가질까? 얼굴들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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