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자는 많고, 계단은 가파르다”
MH산 입구들 중 한 자락에 매달린 막걸릿집 앞에 붙은 팻말이다. (이 말로 글을 한편 쓰자고 거기서 함께 잔을 나눈 친구가 제안했다.)
올라갈 때는 멀쩡한 정신에 그 글을 보고 웃으며 들어간다.
가게에 앉아 마시는 내내 어쩐지 얌전히 굴지 못하고 자칫 아이가 우유 삼키듯 꿀떡꿀떡 삼켜대다 보면 어느새 시간조차 꿀떡꿀떡 통째 삼켜 잊는 지경이 된다. 그래도 가게를 나와 가파른 계단을 도로 내려갈 즈음에는 들어갈 때 보았던 그 팻말만은 용케 기억이 난다. 구르지 않게 조심조심. 거기를 무사히 내려오면 비록 안에서 나눈 이야기와 읽은 글들이 의식 안에서 조각조각 부유하고 상당수는 불어 터져 무의식 깊숙이에 가라앉았을지라도 그것이 뭐 큰일난 지경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무사히 내려온 주취자는 자못 의기양양하게 가슴과 어깨를 펴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은 머리를 베개에 얌전히 내려놓기까지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아직은 안녕’하다며 섣불리 안심한 나머지 평지에 내려서서는 그만 내려왔던 계단을 되올라가지 못할 만큼 취해버린다. 그 사이 술 한 모금 더 보태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 계단은 주취자가 되기 전에 오르고, 주취자가 되고서는 내려온 뒤 다시 올라갈 수 없다.
‘다시는 그만큼 취하지 말아야지.’ 이런 결심은 내 경험상 큰 효과가 없다. 다섯에 한 번이나 실효가 있었을까. 차라리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덜 좋아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반대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 또한 한때 그랬다. 얼마나 실패해 보았으면, 그러면서 얼마나 몸고생도 하고 부끄러움도 겪었으면 그런 결론에 이르렀겠나. 다섯 번 먹을 시간에 한 번 먹기로 익숙해지는 중이다. 와중에도 그 한 번의 술은 거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또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무사히 내려가 보자고, 이번에야말로 평지에 다다라서도 거기를 되오를 수 있을 만큼 정신을 유지해 보자고.
그 팻말과 계단이 참 기특하다. 들어온 손님이 마지막 정신줄 한 가닥이나마 꼭 붙들게 만들고, 저절로 무사히 내려가도록 하고, 이미 취할 만큼 취한 자는 다시 못 올라오게 막아주고, 깨고서는 이렇게 거푸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읽을 책은 많고, 대출기간은 짧다.”고 써붙이고서 대출기간을 2주에서 1주로 줄이면 어떨까. 그럼 이용자가 도서관에 (대출)반납하러 가야함을 더 많이 상기하고 더 자주 가게 될까. 더 많은 책을 탐색하게 될까.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많고, 자리는 부족하다.”라고 써붙이면 더 많은 손님이 어떻게 해야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를 주도적으로 고민할까.
한편 “계단은 가파르고, 주취자는 많다.”는 말은 그다지 신통치 않다. ‘그러니 나까지 굳이 계단을 올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슬그머니 떠오르지 않나. ‘세상은 각박하고, 욕심은 (참 징글징글) 끝이 없다’, ‘인생은 순탄치 않고, 인간은 (참 오골오골) 많다’는 어떤가. 툭하면 입에 올려 질겅대는 말이다. 나까지 굳이 징글러로서 오골에 보탬을 하고 있다는 환멸감이 스물스물 솟아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의지 자루에 구멍이 숭숭 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이렇게 말하는 방식은 송곳처럼 차갑고 뾰족하지 않은가. 영 신통치 않다.
가파른 계단 위의 팻말처럼 말해본다. “욕심은 끝이 없고, 세상은 각박하다”, “인간은 많고, 인생은 순탄치 않다.” 그러니 부질없는 욕심일랑 조금 접는 것이 현명하다 싶고, 순탄치 않은 인생 사는 인간들이 짠한 것 같다. 짠한 존재들이 많기도 하니 좀 더 애잔하다. 이런 느낌은 어쩌면 휴머니즘이다. 말 앞뒤를 바꾸었더니 어쩌다 휴머니스트가 되었다. (그렇다. 다소 과장이고 억지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절대 아니다. 내가 엄연히 그렇게 느끼는 걸. 아무튼 잠시나마 휴머니스트에 빙의할 수 있었다. 가끔은 말 한마디를 이리 돌리고 저리 굴려서 좋은 모양을 잡아볼 용의가 생긴다.
팻말 이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블로그들을 뒤져 MH산 점포 입구의 사진을 찾았다. 그런데 그 실체는 놀랍게도 “계단이 위험하오니 지나친 음주는 삼갑시다.”였다. 이런 기능성만 있고 휴머니즘 맛대가리라곤 없는 문구라니. “주취자는 많고, 계단은 가파르다”를 화제로 만들어 준 그이가 역시 휴머니스트임을 재차 확신한다. (그는 종종 냉소적인 척 연기하곤 한다.)
생각할수록 따뜻한 그 말을 정자체로 써서 문패를 만들어 내 마음 자락에 건다. 그걸로 짧은 글이나마 썼으니 어설픈 못질이라도 해서 고정한 격이다. 환멸감에 말 마디가 불쑥불쑥 내 안에서 솟구치고 감정이 파도쳐 멀미날 때 한번씩 그 문패 앞에 서 볼 양이다. 못난 말, 차디찬 말을 순서라도 바꿔 볼 양이다. 그래도 안 되면 평지까지 마지막 정신줄 붙들고 조심조심 도달해 볼 양이다. 거기서 까짓 큰일날 지경은 아니었다고 어깨도 한번 펴고, 그제야 정신을 놓치더라도 한숨 자고 나면 또 그럭저럭 괜찮으리니. 반성이든 개선이든 또다른 도전이든 미래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