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마 Dec 16. 2024

싸움

도망

싸움 

나로부터 뛰쳐 나가다 


그 순간에 있는 나 


거기에 둘러싸인 나 


주춤하고 망설이는 나 


말과 눈이 길을 놓치는 나 


머릿 속이 하얘지고 앞이 캄캄해지는 나 


웃어버리고 움츠러드는 나 


나마저 나를 지키지 않는 나 


필요한 것은 도망하거나 싸우거나 


나약한 나로부터 뛰쳐나가 잠시 강해진 나로 숨어드는 도망 


도무지 달아날 방법이 없을 때 


숨어들 안전지대가 없을 때 


마지막 도피처 


죽을 각오와 에너지가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싸우는 나다 


그곳은 좁아서 초대할 누군가가 미처 없다 


그곳은 초 하나 켜있어서  


밝은 자리에 겨우 내 두 눈이나마 놓을 뿐이다 


웃어버리고 움츠러드는 내가 


말과 눈의 길조차 허락을 얻는 내가 


마지막 도망친 싸움터에서 구하는 것은 


자유 같은 별이 아니다 


다른 촛불 


그 촛불을 든 두 발이 선 자리 


내 곁이고 그 곁이다 


주로 허황한 욕심이지만 


적의 칼날보다 예리하고 거칠게 나를 가르지만 


품고 있으면 깊이 데는 바람이지만 


기적처럼 내가 촛불 든 곳에서 촛불을 만난다면 


한번이라도 서로의 얼굴을 알아본다면 


도망친 한 가운데서 


나는 비로소 조금 더 강해진다 


그래서 도망칠 곳 없이 선 두 발을 만나면 


나도 마지막 안전지대로 가 초를 켜고 


이를 데 없이 초췌한 얼굴을 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에게 도망오라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도망하고 싶은 것이다 


더 강한 안전지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