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에 대한 선입견

가난한 마음을 버리는 정신적 치유

by 박성옥

단순노동이 치유가 되는 이유

객실청소를 하면서 별 걸 다 생각하게 된다. 이번엔 신발이다. 청소하는 시간이 즐거운 이유 중에 하나는 한 주간 있었던 일을 후회하거나 걱정하는 일로 과거에 갇혀있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대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새로운 생각을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성된다. 주말에 호텔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나에게 나름 치유의 시간이다.


어느 손님의 신발

어떤 객실에 들어서면 침대 위, 의자 밑, 짝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아무 곳에나 신발이 마구 벗겨져있기도 하고,

잠시 머물다 가는 호텔에서도 옷장에 가지런히 짝을 맞추어 정돈되어 있기도 하다.

어느 날 청소기를 돌리다 바닥에 놓인 손님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벽 쪽으로 가지런히 놓인 세 켤레의 신발이었다. 벗어둔 신발을 보면 어떤 성향의 손님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신발이 놓인 모습과 체크아웃을 하고 떠난 객실의 상태는 매우 정확히 상응한다. 신발의 주인은 분명 단정하고 깔끔한 성격일 것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기성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청결상태는 물론 신발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사춘기 딸도 동의했다

"오늘은 잊지 않고 애들이랑 신발에 대해 얘기를 해야겠어."

퇴근하고 운전대에 손을 올리며 딸아이와 나눌 신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일하며 딸들과 나누고픈 경험과 생각이 참 많다. 머릿속에 실컷 정리하며 달렸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면서 그 모든 생각들을 모조리 하수구에 같이 흘려버린 적이 종종 있다. 이번에는 아무리 찝찝해도 샤워하기 전에 대화를 먼저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임과 동시에 청소부 유니폼의 지퍼를 내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두 아이들은 진지하게 신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는 늘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러니까 우리도 신발 벗을 때 신경 좀 쓰자. 알았지?"


공감을 한다는 듯 매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춘기 청소년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강력하게 동의를 한다는 신호이다.


열린 문

첫째는 10학년, 둘째는 7학년이다. 딸 친구들에게 우리 집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받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인종, 성별, 종교 등 보이는 모습을 기준으로 우리 집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래서 남자친구, 여자친구, 다양한 인종과 종교적 배경의 친구들이 우리 집을 허물없이 들락날락 거린다.


선입견은 경험의 축적물

워낙 다양한 친구들이 놀러 오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아이의 친구들과 그 가정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다. 경험은 강력한 학습도구임이 확실하다. 이제 우리 집에 오는 딸아이 친구들의 신발을 보면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가정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유행하는 고가의 신발인지가 기준이 아니다. 눈을 털고 들어오는 행동, 신발의 청결상태,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신발을 어디에서 벗어야 하는지를 살피는 센스, 벗은 신발이 놓인 모습, 그리고 신발을 신고 떠나는 자세를 보면서 퍼즐을 맞춰가는 듯했다.

신발을 보면서 그리도 두려워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던 선입견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생겨버렸다. 선입견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경험이 축적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특정 집단이나 행동에 대한 생각이 선입견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것이 나에게만 굳어진 선입견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비슷한 행동과 결과에 노출이 될 것이고 나와 비슷한 선입견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기왕이면 긍정적인 선입견을 형성하는 행동을 선물해주고 싶다.


평가가 아닌 관찰

타인의 삶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된다. 보이는 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 배경과 과정을 생각하는 것은 교육대 교수가 되면서 생긴 직업병에서 비롯된 습관이라 해두자.

딸아이 친구들이나 그 가정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찰을 통해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나의 불찰로 인해 내 아이는 혹시 잘못된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본다.


내 아이의 신발, 체크리스트

1. 신발은 늘 깨끗한지?

2. 신발이 아이의 발 사이즈에 맞는지?

3. 운동화 끈이 제대로 묶여있는지? 끈이 풀린 채로 걷는 것은 아닌지?

4.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듯이 어느 곳에 신발을 벗어두어야 할지 센스 있게 파악하기. 모르면 물어보기.

5. 현관 밖에서 신발에 묻은 흙이나 눈을 털고 들어가기.

6. 벗은 신발은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확인하기.

7. 운동화 뒤꿈치는 절대로 접어 신지 않기.

8. 차를 탈 때는 신발에 묻은 눈을 털고 발을 들여놓기.

9. 자동차 안에서는 내 신발이 실수로 앞 좌석에 닿지 않게 조심하기.


친구들 신발 좀 보자

아이와 함께 친구들의 신발을 보기 시작했다. 신발과 친구들의 배경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히 비례하는 결과를 확인한 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의 관찰을 통해 얻은 바는 다음과 같다.


1. 신발이 더러운 친구집에 가보니 방도 역시 지저분하더라.

2. 아이의 빠른 성장속도를 따라갈 여유가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렵거나 너무 바쁜 부모도 있구나. 신발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사이즈를 제때 사서 신겨야겠다.

3. 운동화 끈을 제대로 묶지 않거나 풀린 채로 다녀도 개의치 않는 친구들은 성적 역시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구나. 대충 묶는 끈 마냥 숙제도 대충 하는 경향이 있더라.

4. 어느 정도 규율이 있고 기본 예의가 있는 친구들은 어디에 신발을 벗어두어야 할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똑똑한 센스가 있구나.

5. 신발에 묻은 눈을 털고 들어오는 배려와 존중이 몸에 익은 친구들은 평소에 타인을 배려하거나 이해하는 공감도가 높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6.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는 친구들은 말과 행동도 가벼운 경향이 있다.

7. 운동화를 접어신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성격이 급하거나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슬리퍼와 운동화를 구분하지 못하듯 학교 기물의 용도나 목적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8. 엄마 차에 눈이나 흙을 묻히고 내리는 친구들은 조심성이 없고 남의 물건을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인 성향이 있더라.


물론 이러한 상관관계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편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구들의 환경이나 학교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알기에 이 정도 관찰 결과는 어느 정도 신뢰도가 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올바른 행동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 의무를 한답시고 행동의 개선이나 수정을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충고나 지적을 하거나 불필요한 말을 계속할 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된다.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신발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벗을 때는 가지런히, 정리는 깔끔하게 하면 자연스레 아이들도 그것이 당연한 문화라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실천하면서 신발장 정리를 시작했다.


가난한 마음을 겸손이라 착각했었다

주말에 단순노동 일을 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정신적 치유이다. 신발에 대한 선입견을 통해 나에게 긍정적인 선입견을 선물해 주기 위한 치유의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점검과 비움이다.

주말에 잠시라도 신발을 정비한다. 구두는 광을 내고, 더러워진 운동화를 빨고, 토캡의 잔흠집을 없애주고, 중창과 밑창 부분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아준다.

달랑 이민가방 두 개 들고 미국에 왔는데 어느새 신발장이 가득 찼다. 유학생일 때 구입했던 낡은 구두까지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비싼 것도 아니다. 그저 물심양면으로 가난했던 유학생이 면접 본다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고른 정장 구두라는 이유로 여태 모셔두었던 것이다. 한 켤레를 구입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던 가난한 마음을 여태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가난한 마음을 겸손이라 착각했었나 보다. 버린다고 겸손한 마음을 배신하는 것이 아닐진대 말이다.


이제는 내 인생에 여유를 선물해주고 싶다. 신발장이라는 공간에도 여유를 주어야겠다. 옷장에서 안 입는 옷을 비워내듯이 신발장도 미련 없이 비워내야 한다는 각오가 생겼다. 신을 때 기분이 좋고 위로가 되어주는 좋은 신발만 남기고 가난한 마음을 비워내기 위함이다. 비움, 이것이 오늘 노동을 통해 얻은 마음 치유법이다. 오늘도 운동화 한 켤레를 처리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난한 마음을 버리고 긍정적인 선입견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듯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교수로 살다가 정신도 몸도 망가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