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부모 이민생활 15년 차, 철벽을 허물다
“내 딸 보낼게.”
“정말? 고마워. 그럼 하룻밤에 얼마 주면 될까?”
“무슨 돈! 됐어, 우린 가족이나 마찬가지잖아.”
미국 이웃사촌
미국 사람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매우 중시한다. 개인의 권리와 자기 표현하는 방법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가르친다. 우리집 딸들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오면서 한국식으로 키우는 나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기도 했다. 게다가 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라는 땅에 오면 정 많은 한국 이민자들도 개인주의 성향을 더욱 중요히 여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 보니 한국 문화에서는 따뜻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지만, 이민 생활 중에는 그 의미에 마음을 두고 살지 않은지 오래다.
최근에 나를 서슴없이 도와주겠다는 동료에게서 뭔가 진한 정이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나를 가족처럼 두 팔 걷고 도와준다니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이웃사촌이라는 옛말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결혼은 했지만 싱글맘
남편은 한국에 살고, 나는 아이 둘과 미국에서 "결혼은 했지만 싱글맘"으로 산지 어언 15년이 지났다.
그저 공부만 해도 되는 유학생활도 잠시,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공부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강한 엄마가 되었다. 한 달도 채 안된 신생아를 두고 남편이 한국에 귀국하고서부터는 더욱 강하고 씩씩한 싱글맘의 정신으로 나만의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남편이 곁에 없다는 쓸데없는 자격지심인지, 그래도 나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증명이라도 해보고 싶은 씩씩한 자립심인지, 사소한 일이라도 남에게 의지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 조심하고 배려하며 살아왔다.
절대로 자식이 나의 약점이 되면 안 된다.
아빠의 빈자리는 내가라도 채워주자.
손발이 있으면 여자라고 못할 것도 없다.
롱디가 나약함의 핑곗거리가 되면 안 된다.
피해 준 적 없지만
싱글맘으로서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피해 준 적 없지만 편부모 가정은 모두가 가까이하기를 꺼린다.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인사는 하고 지내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라이드 필요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부르면 어쩌냐.
무거운 거 나르거나 들어야 할 때 내 남편 불러대면 어쩌냐.
급할 때 애 맡기면 어쩌나?
남편 없이 혼자 애를 키우다 보면 아무래도 도움을 요청할 일이 많지 않겠냐.
등의 이유로 피한다.
베이비시터
학회 일정이 잡히면 늘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합법적으로 어른 없이 혼자 있어도 되는 나이이기는 하다. 하지만 딸 둘만 집에 두고 3박 4일간 학회에 다녀올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영유아기 때는 한국에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번갈아가며 와주셨다.
학령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베이비시터에게 하룻밤에 $100을 주곤 했었다. 시터가 하는 일은 스쿨버스에서 내리면 문을 열어주고, 내가 해두고 간 저녁을 데워 먹이고, 아침에 시리얼을 먹여 늦지 않게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태워 학교를 보내는 일이었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베이비시터가 필요 없는 나이이기에 3박을 위해 소비해야 할 $300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그저 누가 와서 안전하게 잠만 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잠만 자달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밤시간을 우리 집에 와서 보내야 한다면 통상 $100을 주어야 하는 게 시세이다.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며 그 돈 준다면 얼마든지 자주겠다는 사람들은 많았다. 고마움과 노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를 돈줄로만 여기는 지인과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아이를 돈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사심 없이
"다음 주 주말에는 스케줄 좀 빼줘. 학회 다녀오느라 청소를 못해."
"너 아이들 둘이나 있지 않아? 애들은 어쩌고?"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어. 시터가 필요한 나이는 아니지만 3박이나 두고 다녀오자니 걱정이네."
"저녁에 내 딸을 보낼게. 걱정 말고 다녀와."
우리 애들은 다 커서 케어가 필요하지 않으니 와서 잠만 자주면 되는데 하룻밤에 얼마 주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했다. 조건을 묻지 않고 딸을 보내겠다는 말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이 다 빼앗겨 버리고 말았기에 얼마가 되었든지 간에 달라는 대로 줄 생각이었다.
예상 밖의 답은 함께 일한 지가 3년이 넘었는데 이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며 돈을 받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정말 사심 없이 도와주겠다는 건가? 도움 받고 노예가 되는 건 아닌가? 순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결론은 사심 없이 베풀고자 하는 도움을 받기로 하고 그 친구 딸아이에게 $200을 용돈으로 주었다.
깔끔한 장벽을 허무는 순간
유학생 싱글맘 여정의 시작은 장벽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아무에게도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할 숙제가 더 생기기에 차라리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게 가장 깔끔하다는 생각으로 쌓아 올린 심리적 장벽은 어느새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는 철벽이 되었다.
정말로 사심 없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한 사람 덕분에 그 견고했던 철벽이 녹아내렸다.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한 의도로 도움을 준 호텔 동료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진정한 도움은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상대방의 상황에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도움을 받아보니
뭐든 혼자 하겠다고 참 많이도 노력했다.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나의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안쓰럽지만 독한 년!" 순간, 재미있는 공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연례행사처럼 학회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어쩌고 다니는지 궁금해하는 동료 교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학회 다녀오느라 교회를 빠져도 아이들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오랜 기간을 알고 지내는 한국인 이민자들도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호텔 청소부는 달랐다. 도움 따윈 필요 없어 보였던 나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주었다.
"열심히 사는 너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내가 못하면 내 딸이라도 보내줄게."
철벽으로 가려진 내 반경 안에 들어온 것이다. 얼떨결에 도움을 받아보니 알게 되었다.
"사심 없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있구나. 도움을 받아도 되는 따뜻한 세상이었구나. 그럼 나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벽을 조금은 낮춰도 되겠구나."
많이 배운 교수보다,
동족 이민자 보다,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멕시칸 청소부 동료에게서 배움과 위로를 얻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