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은 농담에도 내 마음을 지키는 연습

넌 아는 남자가 많아서 네 남편이 싫어하겠다

by 박성옥

"날씨가 좋아지면 클리브랜드 (Cleveland)한테 부탁해서 뒷마당 청소 좀 해야겠어."

"레이나, 넌 아는 남자가 참 많구나."

"무슨 의미야?"

"주변에 남자가 많아서 네 남편이 알면 싫어하겠어."


농담

냉장고를 닦던 도라 (Dora)는 분주하게 뒷마당과 집안을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런 농담을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훈련되지 않아서 몇 초간 입을 떼지 못하였다.


드릴에 십자드라이버 비트를 장착하던 손이 나도 모르게 멈추어졌다. 비트를 들고 있던 왼손과 드릴을 들고 있던 오른손이 벌어지면서 드릴척이 공회전하는 소리만 앵앵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이 나만 어색했을 뿐 도라는 계속해서 열심히 냉장고를 닦고 있었다.

욕실 배관을 연결하기 위해 알렉스 (Alex)와 두 명의 배관공이 화장실 벽을 뚫고 있었다.

창문을 갈기 위해 들른 마이크 (Mike)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검사하고 예산을 짜고 있었다.

귀신 나올 듯 지저분한 뒷마당을 돌아다니며 어떤 나무부터 전지를 해야 할지 고민이 얼굴에 가득 찬 탐(Tom) 아저씨와 창문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공회전하던 드릴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너무 일거리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지요?" 멋쩍어서 탐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상황

얼마 전에 작고 오래된 집을 구입했다. 깨끗하게 꾸밀 생각에 부풀었던 마음도 잠시, 막상 렌트를 하려니 꾸미기도 전에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자정이 되기까지 신나게 일을 했다. 주말마다 나가던 호텔에서의 아르바이트도 잠시 쉬기로 했다.

작업복이고 머리카락이고 여기저기 페인트가 묻어있고, 어딘가 한 군데씩 다쳐서 반찬고를 붙이고, 지친 몸을 질질 끌고 집에 들어와 간신히 씻고 잠이 들기를 열흘간 지속되었다.


마귀할망구가 살았을 법한 어둡고 엉망징창이 집이 차츰 괜찮은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런 업데이트 과정에 여러 남자들이 들락날락거릴 수밖에!


내가 주로 하는 작업은 거미줄을 없애고, 창틀부터 주방 구석구석 수년간 덕지덕지 자리 잡은 먼지와 찌든 기름때를 닦아내고, 못자국 메꾸고 페인트칠하고, 가구를 조립하고, 못을 박아 액자를 걸고, 블라인드 설치하고 커튼을 다는 등 특별한 자격증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수준의 일들이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일들은 죄다 남자들이다.


남자들

1. 알렉스 (Alex): 구글에서 찾은 동네 에어컨, 히터, 수도 공사를 하는 업체에서 파견된 배관공. 나는 충성 고객이라 웬만하면 업체를 바꾸지 않는다.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알렉스가 출장 와준지 올해로 4년째다.


2. 마이크 (Mike): 집을 지어 파는 빌더 (builder). 구석구석 집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3. 탐 (Tom): 파일럿으로 전역한 70세가 조금 넘은 아저씨. 작년에 뒷마당 벌목을 요청했을 때 알게 되어 개인 연락처를 받았다. 늘 독서를 많이 하고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다양한 분야에 박식다양하다. 취미가 주식 확인하는 것이다. 단타 치기보다는 우직한 장기투자자이다. 조기은퇴를 꿈꾸는 나는 탐과 일하면서 돈과 관련하여 대화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4. 클리브랜드 (Cleveland): 호텔 시설 관리 직원이다. 자식 뒷바라지 한다고 밤낮으로 쓰리잡을 뛰어가며 열심히 사는 근성이 참 맘에 든다.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해 아쉬워하던 나의 니즈와 현금이 필요한 그의 니즈가 딱 맞아 그간 여러 가지 궂은일을 부탁하게 되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관계이다.


상처

누구보다 더욱 조심하고 선을 지켜가며 살려고 노력한다. 엄청난 근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웬만한 남자들이 하는 것은 나도 배워서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내가 직접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섭섭하지 않게 보상을 한다. 그래야 뒷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손과 다리에 상처가 늘었다.


몸에 생긴 상처는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려다 얻은 영광의 상처라 마냥 뿌듯하기만 하다. 여성여성 하게만 자라온 내가 남편에게 기대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존감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몸에 난 상처는 대부분 나의 실수로 생긴 것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주로 누군가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서 생기는 것이다.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아이 둘을 키우다 보면 여러 가지 억울하고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도라의 농담이 쿨하게 넘겨지지가 않는 이유도 하도 돌멩이를 맞다 보니 축적된 경험의 결과물이다. 마음의 상처가 쌓이다 보면 피해의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아무리 돌멩이를 던져대도 내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농담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혼자 여행가방을 끌고 산부인과로 걸어 들어가서 아이를 낳았다. 퇴원하자마자 신생아를 데리고 운전해서 집에 오다가 핸들을 트는 순간 어처구니없이 손목이 나가버렸다. 그 뒤로 종종 손목이 시큰거린다.


손목에는 아대를 둘러차고 팔꿈치에도 보호대를 착용하고 끙끙대며 일하고 있는 나에게 도라의 농담은 재미로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아는 남자가 많아서 남편이 싫어하겠다"라는 도라의 농담이 누군가에게는 용인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불편했다. 특히, 여러 사람들이 각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는 적절치 않았다. 알렉스가 고개를 절래 흔드는 모습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그 역시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게 역력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타인의 바운더리에 개의치 않고 훅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아무 때나 찾아오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두고 캐묻는 사람,

자녀교육이나 부부관계에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거나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경우,

나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제멋대로 해석을 해버리는 경우 등이 있다.


이렇게 쉽게 선을 넘는 사람일수록 멀리해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빨리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멍청한 것이다. 멍청하면 꼭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이것은 학벌이나 학창 시절 성적과는 무관한 사회성 머리이다. 머리가 나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로 인해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마음을 지키는 연습

내 마음에 상처를 주지 못하게 내가 내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연습을 해본다.


"그래, 나는 아는 남자가 많아서 참 고맙지 뭐야."

"남편도 내 주변에 이렇게 도움을 주는 남자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인데."

"나는 남자들이랑 일하는 게 재밌어. 특히 집수리에 관련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거든."

"내 주변에 남자가 많아서 부러운 게구나."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남자도 여자도 모두 나를 좋아해."

"너도 일하고 섭섭하지 않게 돈 받듯이, 이 친구들도 돈 받고 일하는 거야."


이렇게 내 마음에 돌멩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버블 형태의 보호막을 설치하는 것이다.


믿음

내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누가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지껄여도.


나를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한 남자가 있다. 내 남편.

그 믿음으로 우린 16년째 롱디로 살아왔다.

그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믿음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으니, 나는 내 마음을 굳건히 지키면 된다.

누군가의 돌에 상처받지 않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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