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옥 Mar 28. 2024

교수보다 청소부

행복해지기 위해 은퇴하기로 했다

교수보다 청소부

정장 차림으로 강단에 서있는 내 모습보다,

유니폼을 입고 청소를 하는 내 모습에서

평화로움과 즐거움을 찾는다.


무지한 백인 학생들과 교수들과의 가식적인 관계형성 보다,

인스턴트 같은 손님들에게 베푸는 친절은 부담이 없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으면 동료 교수들에게 시기 질투를 받는 그 자리보다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며 여러 부서에서 와달라고 하는 호텔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대학이라는 무대에서는 조연,
호텔이라는 무대에서는 주인공을 맡는다.


백인 기피증

영어로 가르치고,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논문을 쓰는 미국 대학 교수 10년 차.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영어로 말하기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왜 싫은지 이유조차도 생각하기 싫을 때가 있지 않은가. 이것이 지금 내가 싸우고 있는 마음의 병이다.


영어 기피증이라기보다는 백인 기피증이 맞겠다. 이 증상은 몇 해 전 심한 우울증 증상과 함께 왔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면 백인들이 득실거리는 캠퍼스로 나가야 하는 괴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대학은 지역 특성상 백인이 대부분이다. 미국은 워낙 인종이 다양한데 유독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인구는 참 특이하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에서 대대로 자리를 잡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큰 도시로 나가는 사람도, 타 지역에서 유입되는 인구도 극히 드물다. 관광지도 아닌지라 맘먹고 벗어나지 않으면 다양한 인종에 노출되기 힘든 곳이다. 미국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인이나 멕시칸도 없는 이 지역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특히 교육대는 학생도 교수도 모두가 백인이고 나만 백인이 아니다. 내가 임용된 후 나와 같이 백인이 아닌 두 명의 교수를 채용하긴 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필리핀계 미국인과 영어가 모국어인 흑인 교수이다. 두 교수는 딱 2년 버티고 이 대학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곳의 백인우월주의 문화 때문이다.


독약

독약은 직접 먹는 게 아니다. 자살을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누군가 먹이는 것이다.

마음이 무거운 것은 내가 자초해서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싶어서가 아니다.

백인기피증은 내가 이유 없이 그들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의 교수생활이 스멀스멀 그렇게 만들었다. 백인우월주의라는 문화에 말려들어 그럭저럭 살다 보면 무디게 살 수 도 있다. 독약을 탄 그 문화에 젖어 살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발버둥을 치다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이다.


두 교수는 독약을 피해 떠나기를 선택했고, 나는 남아서 싸워보기로 했다.

먹였던 독약을 토해내고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백인 우월주의

그 두 남자 교수들이 떠난 후 나는 더 단단해졌다. 더 이상 왔다가 2년 버티고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대답이 "노"라는 확신이 서면 직접 물어본다.


"내가 쥴리아(동료 백인 교수)였어도 그렇게 말할래?"


이 방법은 교수회(대학 노조)에서 알려준 것이다. 우린 워크숍을 통해 이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여 말하는 연습을 했다. "내가 백이었어도 똑같이 했겠냐?"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직접 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그 정도 용기가 필요했는데 생각보다 이 질문이 꾀 직방으로 통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백인우월주의를 일시적으로나마 돌아보게 해주는 질문이다. 덕분에 지난 학기에는 내 신경을 건드리거나 불쾌하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파봐야 상처의 깊이를 이해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상대 안 하면 되잖아."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걸 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

"너무 백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거 아니야?"

"남 의식하지 말고 너답게 살면 되잖아."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야. 너만 힘든 거 아니거든."


이런 말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쳐보지 않으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처의 깊이를 모르고 치료해 주려는 게 되려 독이 될 수 도 있다. 그래서 걸러 듣기로 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단번에 이해한다. 학회에서 만나는 교수들은 하나같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먹는 교수들, 변호사를 선임한 교수들, 공황장애를 경험하는 교수들, 학교를 떠난 교수들... 마음을 나누다 보면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내가 독약을 마신건 아니구나를 확인할 수 있다. 해결은 안 되지만 동지를 만나면 그 상처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동질감이 위로가 된다.


교수보다 호텔

주말에 호텔에 가면 이런 모든 마음의 무게가 잠시나마 덜어진다. 막일이라는 일이 몸을 힘들게 할 수 있으나, 마음을 천근만근 힘들게 하는 대학보다 훨씬 재밌다. 가끔 교수 은퇴하고 호텔운영을 꿈꿔보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을 하며 카트에 수건을 채운다.


조기은퇴

박사학위가 아까워서 대학을 못 떠나는 게 아니라 아직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붙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기은퇴 후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은퇴에 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상상과 시뮬레이션이 현실 가능성이 있는 꿈으로 전환되어 은퇴준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행복 찾아

교수로 67세까지 버텨야만 은퇴가 가능하다고 믿었었다. 종신교수가 되던 해 마냥 즐거워만 했다. 나만의 연구실에 마치 67세까지 앉아있을 것처럼 안전선에 도달했다고 좋아라 했다.


호텔에서 일해보니 교수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정관념을 책상 속에 넣어버리면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교수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대학을 떠나기로 했다.


더 깊은 이야기는 신간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서…

이전 12화 늦게라도 와줘서 고마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