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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Jun 05. 2023

졸지에 생과부

너한테 1달러는 어떤 의미니?

“싱글맘이라며. 요즘 우유값도 올랐는데 한품이라도 더 벌어야지."


생과부

내가 어느새 애 둘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는다.

물어보지 않으면 자진해서 남편이나 사적인 일에 대해서는 좀처럼 나누지 않는다.

애들 라이드 한다고 발 동동 구르며 청소하다 말고 호텔과 집을 오가는 날이 잦다.


어차피 쉬는 시간은 시급을 받지 않기 때문에 슈퍼바이저도 내가 애들 때문에 종종 한 시간씩 나갔다 오는 것을 너그러이 배려해 준다. 자연스레 나는 우유값을 열심히 벌어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으로 보였을 것이다. 졸지에 생과부가 되어버렸다.


레이몬드

나이는 예측하기 힘드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호텔에서 10년 넘게 일을 해왔다 하니 대충 30살 정도 되는 청년이다.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잡다한 일을 하는 하우스퍼을 하는 날이었다. 


복도를 지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걸 보고는 몇 차례나 빨래 카트를 비워주었다. 오가며 추가로 필요한 물품들을 채워주기도 하고 30갤런짜리 쓰레기 봉지를 여러 차례 호텔 건물 밖 쓰레기 처리장으로 배출해 주었다. 이런 도움이 청소시간을 얼마나 아껴주는지 모른다.


빨래 카트 비우는 시간 = 욕조 청소 끝내기

수건을 채우러 빨래방까지 다녀오는 시간 = 침대 만들기

쓰레기 비우기 = 객실 전체 청소기 돌리기


오늘처럼 객실을 많이 맡은 날 레이몬드의 도움은 마치 사막을 헤매다 만나는 오아시스만 같다.


팁 1달러

그래서 객실에서 나오는 팁을 레이몬드와 나눠갖기로 마음먹었다. 하필 오늘은 문 여는 방마다 더럽고, 한숨이 푹 나오는 이 무거운 마음을 달래주는 팁조차도 안 남긴 방이 많은 날이었다. 방을 더럽게 쓰는 사람일수록 팁도 안 남긴다. 오전에 받은 팁 2 달러를 들고 레이몬드에게 갔다.


“오늘 받은 팁이야. 나눠갖자."

“괜찮아, 너 다 가져."

“그래봤자 1 달러야. 받아.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난 정말 괜찮아. 너에겐 아이가 있잖아.”

“무슨! 너 덕분에 시간을 많이 아꼈고 진도도 빨리나 갔어.”

“1 달러도 모이면 큰돈인데… 애들 키우려면 이 돈은 너에게 더 필요하지."


우린 1달러를 누가 가져야 할지를 두고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솔직히 레이몬드가 하는 말이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서로에게 밀어주느라지폐가 왔다 갔다 하는 내내 그의 표정은 의외로 진지했다. 진심으로 그 $1이 싱글맘에게는 절실한 우유값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우유값 1달러가 절실했던 싱글맘

레이몬드는 단 한 번도 새 옷을 사 입어본 적이 없다 한다. 레이몬드 어머니는 늘 중고시장에서 3달러 이하의 옷을 사 입혔으며, 사실 얻어 입는 옷이 대부분이었다 한다. 혼자 벌어 레이몬드를 키우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우유 한 방울도 아껴먹어야 했다. 시리얼을 먹을 때면 그릇에 담은 시리얼이 우유에 반 정도 잠길 만큼만 따라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한다.


레이몬드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그 1달러를 안 받으려 했던 그 배려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생각해 보니 내 아무리 가난한 유학생이라 해도 미국에서 우유값을 걱정하는 일은 없었다. 요즘엔 해프갤런 우유를 사지만 예전엔 우유값이 너무나 저렴해서 갤런으로 사놓곤 했었다. 단가가 낮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똑똑하지 못한 소비자의 행동이었다. 느을 우유가 남아서 세안할 때 마사지 할 때 사용하거나 일부러 빵을 굽기도 했다.


1달러의 가치

결국 우리는 그 팁을 나눠갖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마가리타 한잔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구겨지고 약간 찝찝할 정도로 더러운 1달러를 만지작 거리며 한참 멍 때리고 있었다.  물 마시러 나온 딸이 지나다 물었다.


"엄마, 오늘 팁 1달러 밖에 못 받았어? 요즘 사람들 너무 짜다."

"어,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들어볼래?"


엄마의 청소 아르바이트를 적극 지원해 주는 딸은 이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면 어린아이가 옛날이야기 듣듯이 참 흥미롭게 들어준다.

"너한테 1달러는 어떤 의미니?"


우린 $1의 가치에 대해 한참을 나누었다. 단순히 '우유를 아껴마시자' 같은 절약정신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마가리타 홀짝홀짝 넘기며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잔이 비었을 때쯤, 마침 딸아이 전화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친구들과 수다타임 하러 방으로 급히 들어갔다. 딸과의 대화를 끝내야 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우리 대화에 꼭 결론이 항상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책상에 앉아서만 있었다면 생각해 볼 수 없었을 이런 에피소드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문 닫고 들어가더니 손뼉 치며 깔깔거리며 통화하는 딸은 영락없는 십 대 청소년이다. 나는 엄마이기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딸이 밝고 명랑한 겉모습과 $1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깊은 내면을 겸한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 이 글은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담긴 에세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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