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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낙타 Aug 16. 2024

하늘로 돌아간 시인

 천상의 시인 천상병





  이청준의 산문 제목이기도 한 '작가의 작은 손'을 참 좋아한다. '작가의 손'도 아니고 '작은 손'이라니... 수많은 직업군이 있지만, 성직자 다음으로 작가들이 가장 정의롭고 공손하며 그리고 세상을 보는 혜안에 있어 단연 으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작은 손'이 창조하는 세상이 신의 영역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버금갈 만큼 신비로와서다.  그동안 많은 작가들을 만났다. 행운이었다. 한국문학의 르네상스였던 70년 80년대 작가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 시기,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소설 시 비평 등 각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쏟아냈다. 눈부실 지경이었다. 독자들의 열렬한 추앙에도 작가들은 늘 겸손했다. 하나같이 참 좋은 사람들 이었다. 그때 작가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지금 서양 고전 문학과 70.80년대 한국작가들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작가들이 위대하다는 내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깜짝 놀랐다.


 만난 작가들 중 나를 가장 울컥하게 했던 이는 단연 천상병 시인이다. 87년 그해 겨울. 무척 추웠던 걸로 기억되는 그날, 의정부시 장암동에 살고 있다는 천 시인을 만나기 위해 한참 동네를 헤맸다. 주소지는 인사동에서 '귀천'이란 카페를 운영하는 아내 목순옥 씨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주소만 가지고는 도무지 찾을 도리가 없는 복잡한 동네였다. 동네 슈퍼를 찾아갔는데 주인이 대뜸 "그분 요즘 많이 아프시던데..."라고 말하더니 집까지 앞장을 섰다. 그의 집 뒤를 떡 버티고 있던 수락산은 눈물겹게 장엄했으나 그의 집은 엉성하게 지은 남루한 슬레이트여서 묘한 대비를 보였다.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약 냄새가 진동하는 문 앞에서 한참 서성거렸다.


 방문을 여니 천 시인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 있었다. 방은 한 평 남짓. 반은 책으로 차 있고 반은 그가 누운 이불이 전부였다. 책 상으로도 사용될 법한 작은 밥상이 있었는데 그 위엔 앙증스럽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 사진이 놓여 있었다. 손님이 왔다고 일어나 앉은 시인은 통증이 심한지 고통스러워했고 배는 복수가 차 임산부처럼 불렀다. 아이 사진을 가리키며 손자냐고 물었더니 잡지책에 하도 예쁜 아이 사진이 있어 오려 액자에 끼운 것이라고 했다. 대화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의 말은 어눌했다.


 벽에는 초라한 방과는 어울리지 않게 천 시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화가가 그려줬는데 색이 너무 어두워 자신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 대화는 중간에 뚝뚝 끊겼고 질문의 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 천 시인을 돌봐주시는 장모가 방안으로 한약을 들이밀었고 그는 찡그리며 한 입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넣으며 "한약 써서 싫어. 싫어"했다.


 그날 천 시인의 한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60년대는 참 행복했다. 그때 작가들은 인심이 후했다. 내가 그들을 사랑했듯 그들도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었다. 요새는 꿈을 자주 꾸지 않는다. 전에는 하루에 다섯 가지 꿈을 꾼 적도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날도 많다. 새벽에 깨어 자주 뒤척이는데 그때마다 허무한 느낌이 많이 든다. 빨리 몸이 나아서 인사동에 가고 싶고 시도 쓰고 싶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천 시인은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여기서 연루라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동백립 사건에 연루된 친구를 인사동에서 만났는데 돈 몇 푼을 쥐어 주었다. 그게 빌미가 되어 신고 안 한 죄, 공작금 받은 죄까지... 죄없음으로 풀려났지만 강압수사의 후유증은 그의 인생을 바꿀 만큼 컸다.     

 

 천 시인과 헤어질 시간. 손을 쑥 내밀며 "천 원만 줘"라며 천연덕 스럽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2천 원을 쥐어 주었다. 주는 내손이 부끄러웠지만, 세 살짜리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때문에 나도 웃었다. 수락산 자락을 붉게 수놓은 노을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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