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그리고 인어공주-7

브런치 X저작권위원회- 원작:인어공주

by 신인인

7.


“순진한 인어공주에게 인간이 되는 약을 준 못된 마녀는 어디 있느냐! 가게와 집안을 샅샅이 수색해! 마녀를 찾아라!”

“수색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바로 마녀입니다.”


한 인형(人形)이 검은 망토를 두른 채 두 개의 책장 사이에서 나타났다. 인어 왕은 곧바로 마녀를 포박해 무릎 꿇렸다. 그리곤 얼굴을 내보이라며 마녀의 검은 망토를 벗기려던 순간이었다.


“마녀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저주로 죽을 겁니다.”


그 한마디에 왕은 손을 거두었다. 거짓말이다. 향간에 떠돌았던 마녀에 대한 무수한 소문중 하나일 뿐이었다. 미약하고 멍청한 것은 아무래도 집안 내력일까.


“내 딸이 지금 육지에서 죽게 생겼다. 다시 인어로 되돌아올 방법이 있느냐.”

“…”

“어서 말하지 못할까!”

“분명 약을 드릴 때 경고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물러도 된다.’ 기회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더 어찌해야 하나요?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것도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걸 들뜬 마음에 제대로 듣지도 않은 건 온전히 인어공주의 잘못입니다. 왕이시여. 제 말이 틀렸습니까?”


왕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마녀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마녀가 만드는 영약은 귀했고, 그걸 팔기 전 얼마나 신신당부하는지는 마녀로부터 영약을 샀던 제 형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사실 마녀가 죄가 없다는 것은 왕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어 공주가 잘 못 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누군가의 탓이어야 했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으므로. 그때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마녀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우리 동생 한 번만 살려주세요. 원하는 건 다 드릴게요. 제발요. 머리카락, 우리들의 머리카락은 어떠세요? 바다의 인어들은 모두 우리의 머리카락을 탐낸 답니다.”

인어공주의 첫째 언니가 칼을 들어 머리카락을 댕강 잘라내 원탁에 올려두었다.


“저도, 저도 드릴게요.”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차례로 머리카락을 잘라 원탁에 올려놨다.


“저런 쓸모없는 머리카락을…”

“먼저 포박을 풀어 주세요. 그리고 시간을 주세요.”

마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 2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인어 왕과 인어 공주들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망토를 입고 포박당한 마녀도 마찬가지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시간만 시간을 주세요. 그러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왕이 손짓했고 병사들은 포박을 풀었다.


“한 시간. 그래 한 시간 안에 공주를 살릴 방법을 알아내게. 만약 공주가 이대로 죽어야 한다면 그때는… 그대들을 가만두지 않겠네.”


왕은 이 말을 끝으로 공주들과 [마녀의 집] 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멀리 벗어나지 않은 잿빛 사막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인어 공주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초조하게 [마녀의 집]을 바라봤다.


“왜 자꾸 네가 마녀인 척 해”


미카엘이 엘리제가 쓰고 있던 검은 망토를 걷어 제 어깨에 걸쳤다. 깊게 망토를 눌러쓴 그는 고개를 떨어뜨린 엘리제의 표정을 보기 위해 덩달아 그녀 얼굴 옆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엘리제가 고개를 홱 돌렸다.


“엘리. 나 봐봐.”


엘리제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떨렸다. 바닥으로 툭툭 눈물이 떨어졌다. 마녀는 옅게 흐느끼는 엘리제를 품에 안고 그 옛날 스승님이 해주었던 것처럼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울지 마. 엘리제”

“내가 그러니까… 팔지 말자고…”

“그래. 맞아. 네가 그랬는데 내가 안 들었지”

“어린 왕족이랑은… 거래하지 말라고 스승님이…”

“맞아. 그랬는데. 내가 그것도 안 들었네.”

“멍청아! 너 지금 죽게 생겼는데, 지금 웃음이 나와… 흐어엉”


주먹을 말이 쥔 엘리제가 마녀의 가슴을 퍽퍽 때렸다. 엉엉 울면서도 힘이 실린 주먹으로 내려쳤다. 마녀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그저 “아야야. 우리 엘리는 힘도 좋아.” 하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다. 마녀가 엘리제를 다시 품에 꼭 감싸 안았다. 천천히 그녀를 토닥였다.


엘리제의 등 뒤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긴 햇빛 자국이 보였다. 돌아보면 삶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간 은하수 여행, 범고래 떼의 습격, 고아를 제 자식으로 거둬준 할아버지, 향긋한 왕궁 정원, 그곳에서 만난 인어공주… 인어공주와의 기억은 너무나 행복해서 또다시 혼자가 되었을 땐, 그때의 기억으로 숨을 쉬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나쁜 놈들에게 납치되어 몸에 저주를 얻었던 날. 지옥에서 날 구해준 스승님… 그리고 엘리…. [마녀의 집]에서 셋이 함께 살며 많이 웃고, 떠들썩한 날들을 보냈고, 마법을 배웠다. 내가 유일하게 가진 재주인 마법으로 인어 공주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기쁨에 차있었다. 그러나 나의 도움이 그녀에게 독약과 같았다면, 나는 그 독약을 함께 마실 책임을 느꼈다. 사랑에 눈이 멀어, 그녀의 손에 맹독을 들려주는 것도 모른 채 기뻐했으니.


마녀의 몸이 금빛으로 일렁였다. 엘리제는 이상한 예감에 서둘러 몸을 떼려 했지만 그녀를 감싸 안은 마녀의 팔은 단단했다.


“보지 마. 엘리.”

“너… 설마… 아니지?”


엘리제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8편으로 이어집니다.

keyword
이전 07화마녀 그리고 인어공주-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