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원작:인어공주
6.
너덜해진 옷 안쪽에서 주머니를 찾은 마녀가 환하게 웃었다. 주머니 안에서 영약 한 병이 톡 마녀의 손에 떨어졌다. 언제 가져간 건지 보관함 안에 들어있던, 엘리제가 마지막 영약인 줄 안 영약 한 병도 마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곧 그는 주문을 외웠다. 영약 두 개가 허공에서 합쳐지더니 무지갯빛 영약 한 병으로 변했다. 결과물에 함박웃음을 지은 마녀는 제 곁에 다가온 엘리제를 와락 끌어안았다. 마녀는 완성된 영약을 엘리제의 손에 쥐어주었다.
“엘리. 나 아무래도 곧 잠들 거 같아. 전달하는 건 네가 해줘. 내 꼴도 이렇고. 값은… 인어의 목소리를 달라고 해. 알잖아, 인간에게 인어의 목소리는 바다로 홀려 죽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거. 그래서 인간들이 인어를 무서워한다는 걸 우리는 스승님께 배웠잖…”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마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엘리제는 쓰러진 마녀의 몸을 작은 햇빛이라도 닿을까 검은 망토로 꼼꼼히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마녀를 침대로 옮겨 살포시 눕혔다. 곤히 잠든 마녀의 얼굴은 인어 공주에게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기뻐하는, 적어도 엘리제의 눈에 그래 보이는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바보 같은 마녀. 받지도 못할 사랑을 하는 마녀. 받지 못할 사랑을 알면서도 하는 마녀.
엘리제는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다시 인어공주의 앞에 나타났다. 망토를 벗고 나타난 엘리제를 발견한 인어공주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 누구시죠? 마녀님은 어디 가셨나요?”
“마녀는 바빠. 궁에서 꽃이나 기르는 누구랑은 달라. 그리고 나도 마녀야. 후보지만.”
“아…죄송해요. 마녀님. 그러면 저는 더 기다리면 될까요?”
“아니, 이거.”
엘리제가 무지갯빛 영약을 인어공주에게 건넸다. 인어공주는 그 신비한 빛의 영약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걸로 전 사람이…”
“경고.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을 흉내 내는 데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야. 명심해. 그리고…”
‘그래. 미카엘의 말대로 목소리만 받자. 불쌍한 나의 마녀가, 미카엘이 그렇게 좋다는데, 그 멍청이가 그렇게…’ 차분하게 약의 주의사항을 읊던 엘리제의 감정은 다시 망망대해의 높은 파도처럼 솟구쳤다. 애써 눌러 담은 감정이 다시 넘쳐흐를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엘리제의 마음은 알 리 없는 인어공주는 주의사항을 흘려들으며 영약을 들고 감격에 겨운 혼잣말을 되뇌었다.
“이것만 있으면 왕자님의 곁에서, 저도 아내가 되어 사랑받고, 사랑하고, 평생을 행복하게… 왕자님의 금발이 손에 닿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녀도 사실 아름다운 금발이야. 인간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눈은 꼭 진주를 닮아서 반짝반짝했지…”
마녀의 눈은 검은 은하수를 닮았어.
“뺨에 붉은 생기를 띄우고 우아하게 말하는 것도…”
마녀도 얼굴을 붉히고 당황해할 때 얼마나 귀여운데, 늘 얼마나 자상하게 말하는데,
그런데 왜 마녀는 안 돼? 미카엘은 왜 안 되는 거야? 미카엘이 더 먼저였어. 그 왕자가 아니라, 미카엘이, 나의 마녀가, 마녀가, 너를… 그렇게 오랜 시간 너를… 주변만 맴돌면서 너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인어공주가 주의사항도 무시한 채 병을 열어 당장 마시려고 했다. 엘리제가 다급히 인어공주를 말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약의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나갔다.
“값을 지불해야지 인어공주”
그 한마디에 희망으로만 가득 차 있던 인어공주의 얼굴에 두려움이 만연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값은… 무엇으로 치르죠?”
“네 목소리”
엘리제의 말에 인어공주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떠오른 건 명백한 공포였다.
“이런 야만적이고 잔인한 마녀… 목소리를 가져가면 내겐 뭐가 남죠? 난 이 왕국에서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인어예요!”
그 모두가 칭찬하는 예쁜 목소리가 사실은 배의 난파를 불러오는 불행의 목소리라는 걸 알 리가 있나. 멍청한 인어공주. 방금까지만 해도 다시없을 은인을 바라보는 눈으로 봤으면서. 인간으로서는 쓸모도 없을 목소리를 달라 했다고 야만적이라고 멸시하는 눈을 하고. 네가 나쁜 거야. 마녀는 너를 위해 상처 입고도, 제 마력을 쏟아 마지막 남은 영약을 털어 네 몫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는데. 그깟 목소리가 뭐라고 마녀를 잔인하다 매도해.
엘리제의 속 안에서 불같은 분노가 일었다.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한 분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뭣도 모르고 첫눈에 인간에게 반한 인어 공주가 바보 같아서? 아니면, 바보 같은 인어 공주를 사랑한 마녀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그런 마녀를 사랑하는 자신 때문에? 미카엘, 바보 같이 애정을 주고도 야만적이고 잔인하다 욕먹은 마녀가 불쌍해서?
결론 맺지 못한 생각들이 해안에서 떠밀려온 부유물처럼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엘리제는 이제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알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네 모습이 남지. 아름다운 모습.”
성큼. 엘리제가 인어공주를 향해 다가갔다.
“혀를 내밀어 인어공주”
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잘 벼려진 칼날에 겁에 질린 눈을 질끈 감은 인어공주가 비쳤다. 단도가 반짝 빛을 내었다. 그다음은 온통 빨간색. 빨간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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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는 무사히 육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동안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왕자는 인어공주를 제 아내로 들이지 않았다. 왕자에게 인어공주는 그저 해안가에서 발견된 신분을 알 수 없는 말 못 하는 계집일 뿐이었다. 왕자가 인어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리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수많은 왕자의 여인 중 하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뒤늦게 인어공주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인어 왕이 [마녀의 집]에 군대를 몰고 들이닥쳤다.
7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