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그리고 인어공주-5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원작:인어공주

by 신인인

5.


엘리제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지금 첫눈에 반한 왕자 곁에 있으려고 마녀가 만든 영약을 써서 인간이 되겠다고? 너 그 마녀가 널 사랑하는 건 아니? 아니, 그전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누가 첫눈에 반했다고 가족, 친구 다 버리고 혈혈단신 낯선 땅에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곳으로 지위, 재산 다 버리고 떠난대? 사전 조사는 완벽하게 다 했어? 한 번가면 돌아오지 못해. 그래 정말 많이 양보해서 돌아올 순 있는데, 그게 영약 몇 개짜리 값을 치러야 하는지 아니? 너 내가 기자들이 천진난만한 막내 공주라고 기사 쓸 때부터 알아봤다.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고. 이제껏 뭐든 쉽게 얻었으니 인간이 되고 싶다 하면 ‘예예, 공주마마 여부가 있겠습니다. 뚝딱!’하면 인간이 될 수 있는 건 줄 아냐고. 이런 정신 빠진…


엘리제는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무턱대고 입 밖으로 튀어나갈까 이를 악 다물었다. 행여나 여기서 왕족인 공주를 무례하게 대했다간, 인어 왕국의 왕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이곳의 주인인 마녀가 받을 것이다. 원탁 아래로 마주 잡은 엘리제의 두 손이 치미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마침내 엘리제가 입을 열었다. 차분하게 마녀처럼 말하고 싶은 제 의지와 다르게 못된 비웃음이 먼저 튀어나와버렸다.


“풉. 너 아주 어리석구나? 자랑스러운 공주. 육지에 간다면 넌 슬픔도 얻게 될 거야. 지느러미와 꼬리를 없애고 다리를 얻어서, 육지의 그 젊은 왕자와 네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과 함께 환생할 불멸의 영혼도 얻고 싶다고? 영약으로 인간 다리는 살 수 있어도, 인어가 인간의 모습으로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순간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어.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아니? 잘 들어봐, 사랑받지 못한 인어는 물거품으로… 끝으로 웬만하면 어린 왕족이랑은 거래 안 해. 왕이나 여왕 정도는 되어야 거래해도 뒤탈이 없다고.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내 말 듣고 있어?”


부작용에 대해 긴 설명을 두 번이나 했지만 인어 공주는 결연해 보였다.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나 싶어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인어 공주는 엘리제의 말을 끊고 말했다.


“인간이 되어야 해요. 내가 사랑하는 왕자님이 인간이니까요.”


하. 비웃음을 흘린 엘리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이 멍청…” “잘 왔어.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때 와서 다행이야.”


엘리제의 눈이 커졌다. 소리가 들린 곳은 커튼으로 가려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그곳에 있을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너 미쳤어?! 약을 만들어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마녀는 방 여기저기를 뒤졌다. 엘리제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마녀를 보고 빽 소리를 질렀지만 마녀는 “어, 어” 하고 대충 대답한 뒤 계속해서 방을 뒤졌다. 엘리제는 그런 마녀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너. 인어 공주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영영 바다에서 떠난다는데! 떠나겠다는데!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


그 말에 일순간 마녀의 움직임이 멎었다. 긴 한숨을 내쉰 마녀가 줄곧 뭔가를 찾느라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 엘리제의 눈을 바라봤다.


“너는 내가 당장 육지로 간 인어공주를 보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할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걜 끌고 와야지!”

“그래. 지금 내 마음이 그래.”


그 말에 엘리제는 멍하니 멈춰 섰다. 마녀는 다시 부산스럽게 방을 뒤졌다. 엘리제는 조금씩 부옇게 변하는 시야가 원망스러웠다. 목 끝이 커다란 가시가 걸린 것처럼 따끔거렸고 코끝은 날카로운 산호에 스친 듯 뜨거웠다.


‘너 그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널 보는지 알면서… 그런데도 내 마음 알면서… 모르는 척한 거야?’ 모르는 것과 모르는 척하는 것은 달랐다. 이것은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것보다 더한 배신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커다란 분노를 느낀 것은 처음… 아니, 두 번째였다. 처음은 부모가 자신을 빚 대신 팔아버렸다는 것을 안 날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스승님을 만나 그의 품에 안겨 꼴사납게 우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그녀를 안아줄 스승은 더 이상 그녀의 곁에 없었고 함께 스승의 제자로 자란 저 멍청한 마녀는 뭘 그렇게 뒤지는지 찾지도 못하면서 살림만 뒤엎고 있었다.


“엘리. 저번에 내가 입고 온 옷 어쨌어?”


아직 저번에 다친 팔이 아픈지 마녀가 한쪽 팔을 주무르며 엘리제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엘리제는 발갛게 고인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엘리. 대답해! 시간이 없어! 아직 마력이 다 회복된 게 아니라 다시 잠들지도 몰라!”


마녀가 성큼 다가와 엘리제의 양팔을 붙들고 재촉했다. 엘리제는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말했다.


“밖에… 쓰레기통…”


마녀는 순식간에 방을 나섰다. 그가 2층 침실에서 밖으로 연결된 뒷문을 열고 철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엘리제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엘리제의 마음이 빛을 잃고 검게 추락했다. 적어도 엘리제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 침실의 조그마한 창으로 보이는 찬란한 햇빛과 지금 제 마음은 너무나 달라서, 저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너무 눈부셔서 엘리제는 눈물이 났다. 옷가지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미카엘의 침대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붉은 꽃이 여느 때처럼 반짝거렸다. 엘리제는 문 앞에 덩그러니 선 채로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엘리제가 입은 흰 블라우스 소매가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아, 검은 망토’ 소매로 눈물을 닦던 엘리제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마녀의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리제는 거의 구르듯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집 뒤편은 다행히 그늘이었다. 마녀는 그곳에 자리한 쓰레기통을 분주하게 뒤적거렸다. 엘리제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 얼굴에 번진 눈물을 닦아냈다. 우는 여자의 모습도 예쁘지 않다고 물뱀들이 지나가며 말했으니까. ‘그런 말을 듣고도 아직 네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억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봐! 찾았어. 엘리!”


마녀가 기쁜 목소리로 엘리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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