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문구는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 님이라는 분이 처음 말씀하셨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하신 유홍준 님이 책 첫머리에 인용하셨던 말입니다. 이 글을 읽었던 짧은 그 순간, 마음에 확 꽂히면서 마치 무슨 환한 빛줄기라도 지나가듯, 그렇게 황홀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래 저의 전공은 따로 있는데 대학교학부과정에서'사학과'를 부전공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교 졸업증서가 2개입니다. 왠지 모르게 한국역사를, 한국문화와 문화재를 사랑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학창 시절,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 대해 정말 부정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외국에는 크고 멋들어진 건축물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는 쪼그마한 거야?'
'왜 그마저도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고 심심하면 전란, 외세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다시 지었다네.'
'장식도 화려하게 하고 좀 멋스럽게 지으면 안 되나?
단아한 미, 절제된 미는 무슨... 그냥 갖다 붙인 거지.'
이렇게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해서 무식하고, 철없는 생각들로 가득 찼었던 것 같습니다.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침범하는 쪽이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우리가 쳐들어 갔다면 우리의 문화재는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어처구니없기도 한, 청소년의 객기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의 사고 변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세계사'를 읽고부터입니다. 다른 나라나 역사에 관해 알게 되다면,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나 역사적 소용돌이에서의 대처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내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이어온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위의 인용문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고 마음을 주는 만큼 느끼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그런 후에 다시 마음으로 찬찬히 바라보고, 그 당시의 상황들을 마음속에 그려보게 되면, 온전히 남아 있는 문화재가 그렇게 훌륭해 보이고 멋져 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21년은 가족들과 전국의 국립박물관과 문화유산을 많이 보러 다녔던 해입니다. 첫째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도 컸었고 유치원생이었던 쌍둥이들도 지루해하지 않고 잘 따라다녀줬거든요. 그러던 중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해설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어서 그 당시에도 얼덜결에 옆에 서서 해설을 같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불국사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현재의 규모가 아닌, 과거에는 거의 10배나 큰 광활한 장소였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1592년에 일본이 쳐들어오면서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무너뜨리고자 공격을 했고, 그곳에 계셨던 승려분들 포함 많은 분들이 싸우고 지켜낸 덕에 현재의 모습이라도 유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얼마나 마음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지요. 돌 하나하나, 담장 하나하나, 그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게, 무심코 흘러 보내고 싶지 않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당시의 긴박하고 절박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그것을 지키고자 했었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가슴이 촉촉해져 왔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