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 나고야 근교 나들이 ”なばなの里”
일본의 황금연휴, GW (Golden Week) 다.
어디를 가나 사람으로 북적북적한 시기다.
작년 이맘때, 현재 살고 있는 맨션으로 이사를 왔었다. 벌써 1년이나 지났구나.
먼저 일본에 왔던 남편은 2달여 동안 호텔과 위클리맨션에서 생활을 하며, 우리가 함께 살 맨션을 알아봤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현재의 맨션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들이 들어오고 하루 종일 짐 정리를 하다가 이삿날의 국룰과도 같은 중화요리를 먹기 위해 나고야역 근처에 있는 "홍콩반점"에서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연휴 기간에는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좀처럼 나들이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조금 귀찮기도 했고.
그때는 한국에서 이사를 하기 위해 나고야에 왔던 터라 여행자 기분이 들어서 어디라도 가고 싶었는데, 올해는 이주민이라 그런가? 만사가 귀찮다.
그래도 이 황금 같은 연휴를 그냥 보낼 수는 없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들이를 떠나보기로 했다.
귀차니즘을 조금 끌어 앉고 우리가 향한 곳은 후지산의 일루미네이션을 볼 수 있는 나바나노사토(なばなの里)라는 나고야 근교 여행지다.
나바나노사토는 킨테츠 나고야역에서 전철을 타고 30여분을 간 후 킨테츠 나가시마역에서 다시 버스를 10분 정도 타야 한다. 물론 나고야 버스터미널에서 나 바나보사토까지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버스에 취약한 나를 배려하여 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기 전, 킨테츠 나고야역에서 나바나노사토 티켓을 구매했다. 티켓을 미리 구매하는 걸 권장한다고 홈페이지에 적혀있기도 하고 나고야역에서 구매하면 왕복전철표, 나가시마역에서 나바나노사토까지의 왕복 버스표, 입장권, 나바나노사토 안에서 사용가능한 식사쿠폰 500엔짜리 2장이 포함되기 때문에 조금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
킨테츠 나가시마역에 가기 위해서는 로컬(일반) 또는 준급행을 타야 한다. 작은 역이어서 그런지 급행과 특급은 나가시마역에 정차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30분 정도 소요된다.
집에서 챙긴 쿠키를 야금야금 먹으며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나가시마역으로 가는 길.
창 밖의 풍경이 도심에서 어느새 완전한 시골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나가시마역. 전철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차를 했다. 아마도 다들 나바나노사토를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를 나오면 바로 버스정류장이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버스를 타러 갔지만 우리는 역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마실 물과 간식을 먼저 사서 이동하기로 했다.
30분을 왔을 뿐인데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다. 한적한 일본의 시골 어느 마을에 여행온 기분이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까지 더해져 정겨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강한 바람만 아니라면 상당히 평온한 느낌인데 나의 평온한 기분을 강한 바람이 자꾸 무너뜨린다. 아.. 대체 이 바람은 언제 잦아드는 걸까.
1시간에 3번에 나가시마역에서 나바나노사토로 이동하는 직행버스가 있다. (주말, 휴일을 제외하고는 1번 또는 2번 운행) 직행버스를 타고 나바나노사토에 도착했다.
입구 한편에는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한 긴 줄이 있었다. 미리 사 오길 잘한 것 같다. (뿌듯.)
입구 앞에는 일루미네이션 시간이 적혀있었고, 오늘은 6시 50분부터 10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관광지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저녁을 먼저 먹고 구경을 하기로 했는데, 나만의 생각은 아닌가 보다.
식당마다 입장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기다려야지.
메뉴를 고민하다가 돈카츠식당에 줄을 섰다. 40여분을 기다린 후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배고파서 그런 건가? 아니면 원래 맛있는 건가? 겉바속촉의 정석. 양배추 샐러드 인심이 늘 넘치는 일본의 돈카츠집. 티켓을 구매할 때 받았던 쿠폰을 사용하고 추가 금액을 결제한 후 가게를 나서는데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고 나무들이 형형색색 빛을 뿜고 있었고 호수 주변 역시 오색의 빛으로 반짝였다. 20여 분 만에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빛이 반짝일수록 사람들도 늘어났다. 인파에 휩싸여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빛의 터널.
나바나노사토의 일루미네이션 중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다.
역시.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반짝반짝. 황홀하다고 해야 하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이쁜데?
계속 이쁘다, 와~ , 어떻게, 너무 이쁘잖아? 등등 환호성에 가까운 외침을 계속하며 찰칵찰칵. 계속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 이 반짝임이 담기면 좋겠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었다. 아쉽다.
황홀한 빛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웅장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고 음악이 들리는 곳에는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 변하는 후지산 일루미네이션을 볼 수 있었다.
음악 때문인 건가? 규모 때문인 건가? 사람들의 환호 때문인가? 후지산의 웅장함에 압도당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아무 말도 없이 후지산의 모습을 바라만 봤다. 멋있었다.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지산 일루미네이션은 5분 정도 했다. 충분히 일루미네이션을 즐긴 후 꽃의 정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튤립이었으면 좋았겠지만 5월 중순까지는 네모필라(ネモフェラ) 마쯔리였다. 보라색의 작은 꽃.
꽃의 정원을 가로지르면 두 개의 빛의 터널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꽃의 터널이 이뻤다. 여러 색의 조명으로 계속 바뀌는데 사진 찍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내가 원하는 색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좀처럼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어렵다 어려워.
비록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눈에는 가득 담았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호수를 장식한 일루미네이션을 감상하기로 했다. 들어올 때는 해가 떠있어서 평화로운 호수였는데 지금은 무지갯빛으로 물들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같은 곳 맞는 건가? 불빛이 이렇게나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주다니. 대단하구나.
45미터 높이에서 360도로 나바나노사토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아일랜드 후지도 타보았다.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운행시간이 7분 정도 되는데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감상하는 시간이 3분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나오는 길에 거울연못(鏡池)이 있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낮에 여기에 거울연못이 있는 걸 알았다면 미리 와서 봤을 텐데. 연못에 푸른 하늘이 비친 모습을 못 본 게 아쉬웠다. 밤하늘과 비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정말 거울처럼 투명하고 맑은 호수에 비춘 밤하늘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연못의 경계가 모호했다. 신기한 광경이다.
반짝이는 불빛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직도 설렘과 흥분이 남아 있는 상태로 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다시 한번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 나를 칭찬한다.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충전이 되는구나.
하루의 마무리는 집에서 둘이서 오붓하게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마무리!
다음에 또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