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Sep 07. 2023

여기서 법카를 꺼내시면 안 되죠

이것도 직업병인가


"엄마, 혹시 포카가 뭔 줄 알아?"

"당연히 알지. 그거 포토 카드지?"

"우와~ 엄마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엄만 알고 있었지."

"신기하네. 난 엄마가 모를 줄 알았는데."

"뭬야?!"


가끔씩 아이들은 나를 시험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 떠보기도 한다.

그날 사건의 발단은 딸의 생일 선물이었다.


"엄마. 나 누나한테 포카 사주기로 했는데 사 줘도 돼?"

아들이 누나가 지정해 준 생일 선물을 사기 전에 (이미 그것으로 낙찰을 다 한 후였으면서) 내게 물어왔다.

"포토카드를 사준다고? 누구 포토카드야?"

나는 아들에게 물었는데 딸이 가로챘다.

"세상에! 엄마가 포카를 다 알다니!"

"사실은 며칠 전에 '스타트 잉글리시' 듣는데 거기 내용에 나오더라. 그래서 알았어."

이실직고를 하고 나는 광명을 찾았다.

그날 내가 그 방송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그게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리.

"아빠도 알까?"

또 딸이 시동을 걸었다.

"아니!!!"

내 대답은 단호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우리 집 바깥양반을 '쪼끔'은 안다.

그는 절대 '포카'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그럼 아빠한테 물어볼까 아는지?"

"물어보나 마나 모른다니까! 엄마가 장담한다."

"혹시 알 수도 있잖아."

"아니야. 너희 아빤 절대 몰라. 절대로!"

사람이 이렇게 끝까지 확신에 차서 밀고 나갈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불도저처럼 거침없었다.

"그럼 우리 내기할까? 아빠가 그 뜻을 아는지?"

"그래. 엄만 절대 모른다에 한 표! "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선수 쳤다.

"나도 아빠가 모를 것 같아."

아들도 덩달아 합류했다.

"진짜 아빠 모를 수도 있겠다. 나도 모른다!"

딸도 거의 확신에 차 야무지게 말했다.

달랑 둘 밖에 안 되는 군중심리에 압도당했음에 틀림없다.

결론은, 그러니까 우리 집 세 멤버들은 바깥양반의 어떤 단어에 대한 무지를 100% 확신하는 것을 넘어 맹목적이고도 굳세게 믿어버렸다.


드디어 저녁에 시험대에 오른 그 문제의 바깥양반이 돌아오셨다.

"아빠, 아빠!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딸이 현관까지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어, 합격아. 뭐?"

무슨 시험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는 바깥양반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수학 관련 문제가 나오면 실컷 잘난 척할 준비를 마쳤다.(고 보였다, 내 눈에만)

"아빠 혹시 포카가 뭔 줄 알아?"

"당연히 알지! 아빠를 어떻게 보고?"

"그럼 포카가 뭐야?"

"포카 있잖아. 카드 놀이 하는 거. 포카."

"그거 아닌데?"

"아니야? 그럼 뭐야?"

"진짜 몰라?"

"몰라."

"역시 엄마 예상이 맞았군."

딸은 환희심에 넘쳤다.

"엄마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야. 엄만 어쩜 그렇게 잘 알아?"

딸아,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사람이 십 년도 넘게 같이 살다 보면 감이란 게 올 때가 있단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본능적으로 직감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래도 아빠가 법카는 알아. 날마다 지겹게 긁는 거!"

그 양반은 느닷없는 법카를 들이밀며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다.

어허! 위험해, 그렇게 아무 데서나 법카 들이미는 거 아니야!

이 양반이 큰일 날 사람이로세.

함부로 법카 꺼내면 못써.

법카는 이럴 때 나오는 게 아니야.


역시,

기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작가의 이전글 투블럭을 주문받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