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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법카를 꺼내시면 안 되죠
이것도 직업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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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자
Sep 7. 2023
"엄마, 혹시 포카가 뭔 줄 알아?"
"당연히 알지. 그거 포토 카드지?"
"우와~ 엄마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엄만 알고 있었지."
"신기하네. 난 엄마가 모를 줄 알았는데."
"뭬야?!"
가끔씩 아이들은 나를 시험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 떠보기도 한다.
그날 사건의 발단은 딸의 생일 선물이었다.
"엄마. 나 누나한테 포카 사주기로 했는데 사 줘도 돼?"
아들이 누나가 지정해 준 생일 선물을 사기 전에 (이미 그것으로 낙찰을 다 한
후였으면서) 내게 물어왔다.
"포토카드를 사준다고? 누구 포토카드야?"
나는 아들에게 물었는데 딸이 가로챘다.
"
세상에!
엄마가 포카를 다 알다니!"
"사실은 며칠 전에 '스타트 잉글리시' 듣는데 거기 내용에 나오더라. 그래서 알았어."
이실직고를 하고 나는 광명을 찾았다.
그날 내가 그 방송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그게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리.
"아빠도 알까?"
또 딸이 시동을 걸었다.
"아니!
!!
"
내 대답은 단호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우리 집 바깥양반을 '쪼끔'은 안다.
그는 절대 '포카'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그럼 아빠한테 물어볼까 아는지?"
"물어보나 마나 모른다니까! 엄마가 장담한다."
"혹시 알 수도 있잖아."
"아니야. 너희 아빤 절대 몰라. 절대로!"
사람이 이렇게 끝까지 확신에 차서 밀고 나갈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불도저처럼 거침없었다.
"그럼 우리 내기할까? 아빠가 그 뜻을 아는지?"
"그래. 엄만 절대 모른다에 한 표! "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선수 쳤다.
"나도 아빠가 모를 것 같아."
아들도 덩달아 합류했다.
"진짜 아빠 모를 수도 있겠다. 나도 모른다!"
딸도 거의 확신에 차 야무지게 말했다.
달랑 둘 밖에 안 되는 군중심리에 압도당했음에 틀림없다.
결론은, 그러니까 우리 집 세 멤버들은 바깥양반의 어떤 단어에 대한 무지를 100% 확신하는
것을 넘어 맹목적이고도 굳세게 믿어버렸다.
드디어 저녁에 시험대에 오른 그 문제의 바깥양반이 돌아오셨다.
"아빠, 아빠!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딸이 현관까지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어, 합격아. 뭐?"
무슨 시험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는 바깥양반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수학 관련 문제가 나오면 실컷 잘난 척할 준비를 마쳤다.(고 보였다, 내 눈에만)
"아빠 혹시 포카가 뭔 줄 알아?"
"당연히 알지! 아빠를 어떻게 보고?"
"그럼 포카가 뭐야?"
"포카 있잖아. 카드 놀이 하는 거. 포카."
"그거 아닌데?"
"아니야? 그럼 뭐야?"
"진짜 몰라?"
"몰라."
"역시 엄마 예상이 맞았군."
딸은 환희심에 넘쳤다
.
"엄마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야. 엄만 어쩜 그렇게 잘 알아?"
딸아,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사람이 십 년도 넘게 같이 살다 보면 감이란 게 올 때가 있단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본능적으로 직감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래도 아빠가 법카는 알아. 날마다 지겹게 긁는 거!"
그 양반은 느닷없는 법카를 들이밀며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다.
어허!
위험해, 그렇게 아무 데서나 법카 들이미는 거 아니야!
이 양반이 큰일 날 사람이로세.
함부로 법카 꺼내면 못써.
법카는 이럴 때 나오는 게 아니야.
역시,
기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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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할머니 아님 주의! 공무원 퇴직하는 일에만 얼리 어답터.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러려니 합니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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