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신비주의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 2022. 8. 18. naroseon의 블로그(이 나이에 공무원 퇴직) > 글 일부 인용
"자기야, 내일 나 좀 빨리 깨워줘. 학교 개학이거든."
"개학이랑 빨리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꼭 그런 날에 일찍 일이 터지더라고, 뭐가 안된다고 하고."
이젠 스스로 일찍 가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하는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대견하다.
불혹이 되고서야 비로소 '스스로 어른이'가 되어가나 보다.
"근데 자기가 알아서 일어나야지. 나중에 나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자기가 왜 없어? 어디 갈 거야?"
"아무튼 나한테 너무 의지하지 말라고."
"무슨 말이야?"
"신규자도 아니고 자기 나이도 이제 마흔이야. 이젠 혼자 일어나서 갈 때도 됐잖아."
"그래도 자기가 깨워주면 좋지."
"내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라고 항상 말했잖아. 언젠가는 혼자 살게 될 텐데 미리 연습을 해야지."
"자기가 있는데 어떻게 없는 것처럼 살라는 거야? 진짜 어디 갈 거야?"
"아무튼 너무 나만 믿지는 마."
그와 11년 넘게 함께 살며 나에게는 꿈이 생겼다.
가출, 아니면 출가.
종종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항상 잠은 집에 돌아와서 잔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므로 내가 하는 말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면 무조건 혼자 알아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저렇게 전날에 미리 얘기하면서 깨워달라고 하면 알람을 맞춰놓고 다음날 남편을 깨워 줄 때도 있지만 깜빡할 때도 있다.
전에 근무를 할 때 다음날 사전 선거일이라든지, AI 비상근무라든지, 을지훈련 이런 일들이 있을 때, 평소 출근시간보다는 훨씬 일찍 나가야 할 경우가 생기면 난 항상 미리 알람을 서 너 개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
생각해 보니 난 남편보다도 직렬의 특성상 저런 경우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남편에게 내가 부탁을 해 본 적이 없구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지어다.
나보다 먼저 못 일어날 남편에게는 애초에 부탁조차 하지 말 지어다.
특히 선거일에는 유권자의 투표시간이 오전 6시부터 시작하지만 선거 사무 종사자 공무원들은 새벽 4시 반에서 5시까지는 미리 투표 장소에 도착해야만 한다.(물론 전국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최소 언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다.)
그럼 집에서 적어도 3~4시 정도에는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
선거가 있는 해는 사전 선거일 이틀, 본선거일 하루, 이렇게 3일 정도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한 해에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치렀던 적도 있었으며, 대통령 선거와 보궐선거를 치렀던 적도 있었다.
선거 한 번 하는 것도 정말 큰일이다.
평일부터 주말 이틀 내내 출근해서 선거 공보물 작업 공장을 가동할 때면 솔직히 정말 피곤하고 힘들다.
할 일도 많고, 준비해야 할 일도 많고, 무엇보다 업무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
솔직히 전날 잠다운 잠을 못 잔다.
내가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이 되고 걱정도 된다.
'아, 나는 선거 출마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으리.'
태극기 앞에 굳게 맹세한다.
단순히 투표 사무원으로만 일하는 나도 저 정도인데 선거업무 담당자는 어떨까?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저런 중대한 일에서는 지각이나 실수 따위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직장인이라면,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어젯밤 남편의 부탁을 듣고 그가 과거 교육청에서 일하던 시절의 그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살인의 추억'을 능가하는, 우리 집에서만 대히트를 친 '을지훈련의 추억'이다.
"내일 을지훈련이라고 빨리 나오라고 하네."
"빨리 가야지 그럼. 나도 일찍 가야 돼."
"을지훈련 그거 뭐 별거 있나?"
"잘은 모르지만 간단히 대충 넘어가진 않던데? 우리도 6급 이상부터는 7시까지인가 소집하고 나머지 직원은 8시까지인가 오랬어. 전 직원 메일 다 오고 문자도 몇 번이나 왔어."
"그래?"
나의 경우, 을지훈련이 있으면 미리 문자로 소집 명령(?) 관련 문자를 전 직원에게 보내준다.
그 문자만 봐도 긴장이 된다.
꼭 내가 그 훈련에서 막대한 책임을 지고 지휘하고 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임무를 맡은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정해진 시간 내에 사무실에 도착해 출근 지문을 찍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그만큼 어깨 무거운 일도 없다.
자고로 기본을 잘하기가 제일 힘든 법이니까.
교육행정직으로 근무하는 남편은 당시 지역교육청으로 발령받기 전에는 쭉 학교에서만 근무를 했기 때문에 공무원 신분이긴 했지만 공무원이라면 마땅히 치르는 각종 행사(?)를 엄격히 치르진 않았다고 했다.
교육청만 가도 제대로 형식을 갖추고 했던 것들을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심상하게 넘겼었다, 고 남편이 회상했다.
"을지훈련 이번엔 제대로 하겠네?"
"그렇지.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아주 엄격하게는 안 하거든, 하기는 해도."
"그래. 처음이니까 잘해 봐. 8급 공무원이 뭐 그리 중요하게 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몇 년 남편과 살아 본 결과 척하면 척, 어느 정도 남편의 미래 행동에 대해 예상을 적중시키는 신내림을 받은 나는 그날도 뭔가가 느껴졌다.
데자뷔.
"8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던데?"
"아마 그럴 거야. 우리나 자기네나 똑같이 적용되겠지 그런 건. 여유 있게 20분 정도 먼저 도착하면 될 거야."
"근데 진짜 8시까지 가야 돼?"
아니, 이 양반이 지금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럼 가짜로 가리?
슬슬 불길한 신내림의 저주가 내리는 것 같다.
"무슨 소리야 그게?"
"말로만 그러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아니, 8시까지 오라고 하니까 그렇지."
"8시까지 와야 하니까 8시까지 오라고 한 거지."
"그냥 말만 그런 거 아냐?"
"아니,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 정신상태가 못쓰겠구먼? 말로만 그러는 거 아니고 진짜 8시 전까진 가야 돼. 을지훈련이 무슨 옛날 민방위 교육할 때 아들 대신 엄마가 가서 서명만 달랑 하고 오는 그런 건 줄 알아?"
옛날에 면사무소에서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장님이 대신 서명해줘, 할머니가 손자 대신 오셔, 부인이 애 둘러업고 와......
심지어 내가 민방위 담당자 일을 할 때도 여전했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많이들 오신다.
면사무소에서 경로잔치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는 정말 오랜 미풍양속을 조상 대대로 고스란히 잘 전수해 나가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큰 조직에서 근무를 안 해봐서 그런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는 눈치다.
이런 식으로 직장 생활하면 곤란한데 어쩌나.
불길한 기운은 이미 남편의 차 조수석에 착석한 지 오래다.
"교육청은 시골 작은 초등학교가 아니야. 오라는 시간에 맞춰서 가."
"몰라. 조금은 늦어도 괜찮겠지 뭐."
"아니라니까. 내일은 늦으면 안 된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다음날 나도 아이들 챙겨서 데리고 나가기 바빴으므로 나대로 먼저 출근을 했던 것 같다.
남편은 먼저 갔는지 어쨌는지 안중에도 없었다.
어째 전날에 말하는 게 불길하더라니 저녁에 퇴근하고 온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의 표정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나는 당시 근무지가 가까웠으므로 남편과 같은 시간대에 나갔어도 지각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지각할 것이 뻔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그렇게 한결같을 수가 없다.
"나 오늘 교육청에 몇 시에 도착했는지 알아?"
"설마 지각했어?"
"가니까 8시 15분 넘었더라."
"뭐? 8시까지 가야 되는데?"
"나 오늘 정말 찍혔어."
찍히기만 했을까. 산산이 조각나 부서졌으리라.
"내가 어제 그렇게 말했잖아. 을지훈련 그거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 시간을 꼭 맞춰 가야 한다고. 왜 그렇게 시간 맞춰 오라고 연락해 주겠어? 그럴만하니까 그런 거지. 아무리 교육청에서 일 안 해봤다고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시골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나도 그 정도는 알겠다. 누가 안 가르쳐 줘도."
"난 그냥 말로만 하는 줄 알았지. 옛날에 학교에서 하던 거 생각하고."
"그게 아니라고 했잖아. 자기 공무원 맞아?"
하여튼 내 말만 죽어라 하고 안 듣는 사람이다.
혹시 무슨 비밀 스파이 아냐? 정체가 뭘까? 누구한테 사주를 받은 거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스파이도 아무나 안 시켜줘.
가끔 나의 정체성의 혼란도 벅찬 마당에 남편의 몫까지?
왜 안 그랬겠어.
내가 다 민망하다.
이 순간 나는 그와 관계의 거리두기를 간절히 원한다.
"근데 사건이 또 있었어."
아니 됐어! 그만! 거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아.
사고는 하루에 한 번만 치는 거야.
'일일 사고 총량'의 법칙 몰라?
지금 이 사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커.
하루에 사고 두 건 치면 징역감이야.
"왜 또?"
뭐라도 입고 쓰고 해서 최대한 가려줘야지. 남들의 소중한 눈 건강을 위해서. 사람이 너무 이기적이다.
"그게 내가 분명히 내 자리에 둔 것 같은데 없는 거야."
"필요할 때 입으려면 잘 간수해 놨어야지. 어디다 두고 안 입었어?"
그 민방위복은 그런 날 아니면 입을 일도 없는데 왜 민방위복이 만들어진 보람도 없이......
"난 분명히 내 자리에 둔 것 같은데. 근데 없었어."
"다른 데 놔두고 착각한 거 아니야?"
"거기 사람들 다 모여 있는데서 내 옷 못 봤냐고 찾으러 다녔다니까."
"자기 옷을 누구한테 가서 찾아? 아니 오늘 발령받은 신규자야?"
"다행히 나중에 찾아서 입었어. 그거라도 입고 있으니까 좀 낫더라. 옷도 못 찾았으면 어쩔 뻔했어?"
"나 같으면 다음날 을지훈련 있다고 하면 전날에 미리 한 번 더 민방위복 잘 있나 확인해 봤을 것 같은데."
"아무튼 지각까지 하고 민방위복도 안 입고 나 오늘 진짜 정말 찍혔을 거야."
그랬겠지.
사람들은 오죽 어이없었을까.
벌써 공무원 생활이 그때 7년도 다 돼 갔을 때인데 행동은 갓 발령받은 사람 같았다.
아니야. 신규자는 오히려 더 정신 바짝 차렸을 거야.
남편은 항상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언제나 '신규자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고 나는 나를 세뇌시키기에 이른다.
쇼윈도 부부가 이 소중한 가정을 지키는 비결이다.
공무원 퇴직하기 전 내가 근무를 할 때, 남편은 나보고
"자기는 너무 공무원처럼 행동해."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자긴 나를 너무 민원인 대하듯 해."
이러질 않나,
"자긴 우리 아빠를 꼭 이장님 대하듯 해."
이러더니, 저건 또 무슨 말이람?
'공무원처럼 행동'한다기보다 그냥 해야 할 일은 했던 것뿐인데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일반행정 지방직, 남편은 교육행정직, 공무원은 공무원인데 서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부부가 아니었어야 말이 통할 사람들, 잘못된 만남.
자기 업무만 해 본 사람들이 어쩌겠나.
< 22. 8. 21. 어젯밤 '을지훈련의 추억(속편)' >
"내일부터 을지훈련인가 보던데?"
"아 그래? 응... 그런 것도 같다."
"빨리 안 가도 돼?"
"학교는 그렇게 심하게(?) 안 해. 애들 교육이 우선이지. 엄격하게는 안 하는 것 같아."
* 지금 그곳의 사무관님께 아룁니다.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어요."
*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눈물로 호소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이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에 해당합니다.
공무원도 사람이잖아요. 인조인간 로봇이 아니잖아요.
오해는 금물입니다.
힘닿는 데까지 제가 단속해 보겠습니다.
오늘부터 또 을지훈련이 시작된다고 하니 잠시 그의 소중한 을지훈련의 추억이 선명히도 떠오르는 것이다.
< 사고 친 이 by 그 남편, 기록(고발)하는 이 by 그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