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공무원이 의원면직자를 부러워한다.

의원면직자 앞에서 경조사비를 논하다.

by 글임자
22. 8. 25. 빛도 있고, 어둠도 있는 것이다.


<사진 임자 = 글임자 >



"또 경조사비 나가게 생겼네."

"왜? 무슨 일 있어?"

"교무실 OO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네."


지난주 금요일, 남편이 퇴근 후 오자마자 하는 소리다.


똑같은 말을 이틀 전에도 했었다.

"경조사비 나가게 생겼어."

이 말과 동시에 잽싸게 조의금을 송금했다.


남편은 교행직이라 솔직히 교무실 직원들과 크게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도 전체에서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에 한 번 같이 근무했던 행정실 직원들과도 다시 만나기는 힘든 일이다.

아무래도 행정실의 같은 교육행정직렬 공무원들과 더 가까운 편이다.


두 건, 모두 교무실 쪽 관련 일이었다.


"솔직히 한 달에 얼굴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나야 뭐 계속 근무했다면 작은 군에서 평생을 돌고 돌았겠지만 자긴 그나마 범위라도 넓잖아."

"이게 한 달에 몇 번만 돼도 금액이 상당하다니까."

"맞아. 특히 결혼식 많은 봄이나 가을엔 진짜 출혈이 커. 또 날이 추워지면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시기도 하고."

"이제 슬슬 시작인가 봐."

"나도 그동안 받은 건 갚아줘야 하는데.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갚으려고 생각 중인데. 어차피 다 품앗이인 셈이잖아."

"일 그만두고도 다 챙기긴 힘들지 솔직히."

"그래도 그게 아니지. 소식을 알면 난 챙길 건데, 나중에라도? 왠지 빚진 느낌이란 말이야."

"알아서 해."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되면 갚는 게 맞는 것 같아. 사람 사는 게 꼭 받은 만큼 주고, 내가 받았으니까 주고, 안 받으면 안 주고 그런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것저것 다 챙기려면 부담되잖아."

"조율해 봐야지 뭐."


부친상을 당했다는 문자 앞에서 앞에서 남편은 시름에 잠긴다.


물가를 반영하는 것인지 경조사비도 해마다 조금씩 오른다.


내가 결혼을 하던 해에 정말 전화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었지만 '체납 세금 징수'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직원들에게서 축의금을 받았었다.


이장님들도 어떻게 아시고는 축의금을 건네주셨다.

작년 육아휴직 중에 한 이장님께서 딸의 결혼 소식을 알려와 축의금을 보낸 기억이 있다.

이렇게 먼저 알려주시니 고마웠다.

어떻게든 기회가 되면 갚을 요량으로 그 명단을 여태 잘 간직하고 있다.


체납 세금이 그렇게 성황리에 수금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떻게 보면 내가 속 편하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맞아, 그럴 수도 있지. 진짜 사회생활하기 쉽지 않다. 친부모면 몰라도, 장인, 장모상까지 알리면 하자니 부담되고, 그래도 같은 근무지에서 일하는데 안 하기도 그렇고. 내 친구는 부모까지만 한대. 그리고 같은 과 직원만 하고."


"난 예전에 조부모상까지 다 알린 직원이 있어서 좀 뜬금없긴 하더라. 나중엔 직원들이 너무 부담스러워해서 조부모상은 그냥 알리지 말자고 해서 안 하고, 부모님, 처가 부모님상까지만 알렸던 것 같아. 친한 사이끼리는 알고 챙기더라도 전 직원한테까지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하더라."

"할아버지 할머니는 좀 그렇다."

"솔직히 부담되긴 하지. 적당히 알아서 해야지 뭐."


같은 지자체 내에서 부부 공무원도 상당히 많았으므로, 부모상이 그 배우자의 장인, 장모상이 되는 그런 경우도 많았다.


정말 쉽지 않다.

이 상황에 경조사에 아무것도 신경 안 써도 되는 내가 진심으로 부럽다고 말한다.

경조사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친하면 금액도 더 올라간다.

친하면 부모에서 끝나지 않고, 장인, 장모까지 신경 써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랬다.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한정해야 할지도 가끔은 헷갈린다.


외국은 그런 문화가 없다고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고도 한다.


공직 생활하던 때에도 가만 보면 퇴직하고 한참이 지난 퇴직자들의 경우, 경조사가 생기면 어떻게들 알고(그분들이 알려주는 것인지 어쩐지 몰라도) 전 직원에게 메일이 뿌려진다.


'전직 OO과 과장님으로 퇴직하신 OOO, OO에서 근무하시다가 퇴직하신 OOO'이런 식으로,

사람은 떠나고 없지만 경조사가 생기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근무 당시 그만큼 많은 경조사를 챙기셨으리라.

윗분들은 정말 어지간한 경조사는 다 챙기시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결혼하고 몇 년(아마 5년 정도)이 지났는데 지역 축제 자리에서 과거 신규자 시절 기관장이셨던 분을 우연히 만나

"임자 씨, 그때 내가 결혼식 때 깜빡했네."

하시며 느닷없이 건네주신 축의금을 받은 적이 있다.

나를 그곳에서 만나리라고 예상한 것은 아니셨을 텐데, 흰 봉투에 가지런히 담긴 그것을 보다 잠시 멍해졌다.

'혹시 다른 볼 일로 사용해야 될 것인데 난데없이 나를 만나는 바람에 그 용도가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받아야 되냐 말아야 되나, 받아도 되는 건가?

다행히 5년 전의 그 남편과 계속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이제 남편이 복직하고 두 달 되어 간다.


육아휴직 당시에도 문자로 알려주니까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챙길 사람은 다 챙겼지만, 이런 경조사 문자를 받을 때면 새삼 직장에 복귀한 실감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내가 육아휴직 중일 때도 챙기긴 했지만, 이미 결혼을 하고 교행직으로 근무하는 남편은 청첩장을 받을 때면 '조금 그렇다'라고 한다.

뭐가 그렇다는 건지.


대개 미혼일 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나중에 근무를 하다가 결혼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특히 결혼 축의금을 낼 때면


'나는 이제 받을 일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것이다.


"왜 받을 일이 없어? 우리나라는 결혼 한 번만 하라고 법으로 정해 놓지 않았어. 방법은 있지. 잘 생각해 봐."

"그게 무슨 말이야?"


잘 알면서 물어본다.


품앗이, 그 뜻은 애초에 좋았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외벌이 가장이 된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이 번뇌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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