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00명 민원 지옥에서 탈출한 대가
과연 남편의 떡 추억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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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자
Aug 31. 2022
22. 8. 29. 떡으로 답례한다.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틀 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양손에는 떡이 들려 있었다.
아들이 무척 사랑해 마지않는 떡, 이다.
"이게 웬 떡이야?"
"하나는 새로 전입 온 선생님 거고, 하나는 저번에 상 당한 선생님이 주신 거야."
내가 근무를 하면서도 이바지, 또는 선물, 또는 무언가를 기념 삼아 가장 많이 받았던 음식이 떡이었다.
최근 신규자들이 첫 월급을 받으면 떡을 돌리던 생각이 났다.
모양도 예쁠 뿐만 아니라 앙증맞은 것이 맛도 꽤 좋았다.
전에 내가 했듯이 시골 떡 방앗간에서 그냥 집어 온 것이 아니라 이름을 내 걸고 하는 그런 떡집에서 맞춘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순간에도 새삼 세대차이를 느끼게 된다.
귀염성 있는 메모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성의하게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같은 내가 사들고 온 모양새의 내 떡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가히 위화감을 조성할 만했다.
"전 직원들한테 다 하나씩 돌린 거야? 직원들도 수 십 명인데."
"그러게. 학교는 유난히 떡을 많이 돌리네. 근데, 옛날에 내가 자기 사무실로 떡 배달해 줬던 거 기억나? 갑자기 연락해서 떡집에 있는 떡 다 쓸어 담아 오라고 그랬잖아."
그렇지, 이쯤에서 생색을 내는 시간이 돌아왔다.
떡 두 덩이에 남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한다.
2017년도의 일이다.
2016년 나는 출장소로 발령을 받아 1년간 정말 민원인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나 혼자만 일을 다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지자체 내에서 가장 많은 민원인을 받는 곳이 그곳이었다.
하루 평균 300명이 기본이었고, 평균이 300명 이상이었다.
정말 민원인이 많은 날은 대기 번호표가 400번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 지자체 내에서 유일하게 번호 대기표까지 장만한 곳이 그곳이었다.
순수하게 단지 등, 초본, 인감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팩스민원 발급 등 민원서류만 떼러 온 인원이 400명이 넘었던 거다.
그곳에서의 1년은 정말 몸이 고됐다.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별의별 민원인들을 상대하느라......
그곳의 직원 어느 누구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끼리 의지하며 지낸 시절이다.
다행히 마음이 잘 맞아 서로 사이좋게 지지고 볶고 재미있게 살았다.
몸은 힘들었으나 즐거웠다, 고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시절이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어느 곳이나 직장 생활할 때 일도 일이지만 사람이 힘들면 그만큼 괴로운 일도 없는데, 직원들끼리 사이가 좋은 것도 큰 복이었다.
일은 일대로 많고 그 수백 명의 민원인 중에는 정말 '인간적으로 상대하고 싶지도 않은 민원인'도 꽤나 많았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은 그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 시절만큼 인사 시기가 기다려졌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2017년도에 나는 그 출장소가 속한 읍사무소로 옮기게 되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 인생 성공했다고 주위에서 그랬다.
양적으로 일이 준 것만 생각하면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읍사무소로 들어가고 며칠 안되었을 때였다.
"임자야, 너 완전히 성공했다. 본청 들어오기 얼마나 힘든데 1년 만에 들어오고. 떡이라도 돌려야 하는 거 아니냐?"
그분은 그냥 웃자고 하신 말씀인데, 나는 그곳을 벗어난 감격에 겨워 아무 생각 없이
'자기야, 지금 당장 근처 떡집 가서 있는 떡 다 털어와 줘.'
하고 문자를 보냈다.
수신인은 당연히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이었다.
당시 학교에 근무 중이던 남편은 5시가 조금 넘으면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최대한 나 퇴근하기 전까지 싹 쓸어 와야 돼. 여기 직원들 많으니까 최대한 많이 사 와. 무조건 많이야. 알았지?"
갑작스러운 나의 부탁(이라기보다 이 정도면 긴급명령)에 남편은 잽싸게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30분도 안되어 남편이 떡을 한 보따리 들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오면 어떡해? 사 오라고 했지, 사무실로 들어오라고는 안 했잖아."
잠깐 전에 직원의 남편이 맛있는 간식을 골고루 사 와서 점잖게 들어와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던 풍경이 떠올랐다.
남들 남편처럼 깔끔하게 옷 차려입고 간식이라는 명목 하에 달콤한 도넛과 사과주스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멋지게 등장하기를 바랐었으나,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은 영락없이 떡집에서 배달을 온 외모였다.
다정하게 손 잡고 들어서는 신랑 신부처럼은 아니더라도, 퇴근 시간이라는 마법이 풀리기 전에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신데렐라는 헐레벌떡 떡 상자를 이고 지고 들어와 엉겁결에 직원들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읍장님까지 다 계시는데, 거의 전 직원 회식 분위기인데 그 고요하기만 한 사무실에 쭈뼛거리며 들어선 남편에게 괜히 핀잔을 주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게 하고 남편을 돌려보냈다.
실은 남편은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사교적인 성격이 못된다며 나의 직장 사람들과 마주치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나를 불러 낼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정도면 엄청난 용기를 냈던 것인데 나는 괜한 소리만 해댔다.
"임자야. 아까 농담한 거 듣고 바로 남편한테 심부름시켰냐? 그냥 한 말인데. 아무튼 잘 먹을게."
나도 참 곧이곧대로였다.
하루 참았다가 알록달록 예쁜 떡들로 사 와도 됐을 것을.
떡 얘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주문에 들어갔으니.
성격 급한 아내에 바로 행동에 옮겨 주는 남편이라니.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골고루도 사 왔네. 잘했어."
"자기야. 내가 근처 떡집까지 다 들렀어. 시장도 가고. 오후라 거의 다 팔리고 몇 개 없더라."
"난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떡 얘기가 나와서 말이야."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시키면 어떡해. 미리 말했으면 더 맛있는 걸로 골고루 많이 샀을 텐데."
"아니야. 저 정도면 됐어. 금방 집에 가서 다들 밥 먹을 텐데 뭐. 고생했어. 고마워."
과연 그가 사 온 떡들은 실로 다양했다.
저 사진에 나온 것 같은 떡은 기본이고, 무지개떡, 백설기, 인절미, 바람떡,꿀떡, 하여간 떡집에 남아있는 떡이란 떡은 다 쓸어 왔으니 다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인기 있고 맛있는 떡들은 이미 다 팔리고 남은 것들만 사 온 셈이라 나는 살짝 아쉬움이 남긴 했다.
호강에 겨웠다.
학교에서 떡을 하나라도 들고 오는 날이면 남편은 그때 '떡 배달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그와 함께 사는 한 나의 공직생활 중의 에피소드는 잊히지 않고 자꾸 그 기억이 샘솟아 날 것만 같다.
일은 그만두었지만 추억은 남아있다.
첫째 임신 중에 내가 받았던 핍박과 설움을 사골보다도 더 진하게 우려내듯, 남편도 그에 못지않게 떡을 볼 때마다 항상 '1+1'으로 잘 우리는 것이 있었으니,
"근데, 자기는 나 인사이동하고 승진할 때 한 번도 화분 하나 안 보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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