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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5. 2023

한밤 중에, '조기집행'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조기집행 하는가

2023. 7.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커피 머신 세일한대. 완전 특가야. 진짜 싸."

"난 관심 없어."

"그래도 진짜 싸다. 어때?"

"안 어때. 얼른 기절이나 하셔."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조기집행 때문이었다.

조기집행 한다고 연가보상비가 상반기에 미리 조금 나왔고 그 양반은 그걸 탕진해버리고 싶어 좀이 셨던 거다.

그때가 밤 11시 45분경이었다.

확실해, 이 정도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어.

전생에, 그러니까 나라는 못 구하고(나랑 결혼한 걸 보면 전 세계를 구한 게 틀림없는데) 쇼핑을 못해서, 완전 특가 상품을 기어이 사지 못해 한이 맺힌 채 죽은 구신이 하필 이번 생에 환생한 게 틀림없어.


그 양반이 진작에 기절한 줄 알았다.

본인은 집안일을 다 마무리하고 여유롭게 혼자 독서 중이었다.

한 번씩 느닷없이 저렇게 내게 전화하는 양반이 집에 있어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두고 쓰고 있었는데 하필, 운 나쁘게도 핸드폰 화면이 반짝반짝하는 그 순간에 수신 거절을 누른다는 게 통화를 누르고 말았다.

"이거 지금 특가래. 조금 지나면 못 사. 이참에 하나 장만 할까?"

"특가고 거저고 지금 이미 하나 집에 있잖아."

"당신 커피 좋아하잖아."

"누가 그래?"

"커피 잘 마시잖아?"

"또 어떤 여자랑 헷갈리는 거야?"

"잘 마시면서 그래?"

"잘 마시는 게 아니라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지. 굳이 찾아서 먹거나 그렇지 않아. 맨날 마시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새로 사서 매일 마시면 되잖아."

"난 필요 없다니까. 그리고 지금 잘 쓰고 있는 게 있는데 또 사고 싶어? 진짜 뭐가 그렇게 사고 싶을까? 그 돈 있으면 나한테 줘. 과자나 실컷 사 먹게."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거야. 당신도 좋은 걸로 마셔 봐야지."

이래서 아무 속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니까.

번지르르하게 하는 그 양반의 말만 들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끔찍이도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이 그 양반이시다.

그러나 내가 겪어 본 결과 나를 생각해서라기보다 '특가이기 때문에' '사야만 한다'고 이미 지름신이 내리셨을 뿐이다. 지름신과 신아들, 그들의 관계는 그러할 뿐이다.

사고 싶어 근질근질하는 것이다.

특가라고는 했지만 결코 저렴한 가격도 아니었다.

그 기계는 재작년부터 그 양반이 욕심내던 그 모델이었다.

직장에서 써 본 결과 다들 만족했다며 '우리도 하나 들이자'고 무턱대고 밀고 나가다가 내게 수차례 제지를 당했던 요망한 그것 말이다.


"지금 필요한 데부터 먼저 지출을 해야지. 왜 또 쓸데없이 바람이 들었어? 집에 있는 거나 마르고 닳도록 잘 써! 난 저거 애들한테 가보로 물려줄 거야, 자자손손!"

"그것도 내가 사니까 제일 잘 쓰는 사람이 누군데?"

"내가 항상 말했지? 없으면 말고, 있으니까 쓰는 거지. 쓰려고 산 거 아니야? 샀으니까 써야지. 집에 모셔두고 썩히려고 샀어? 썩고 나면 선산에 묻어주려고  그래? 안 샀으면 나도 안 썼지."

이 말을, 똑같은 대답을 난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너희 엄마는 안쓸 것처럼 하다가 제일 잘 쓴다니까."

애먼 아이들까지 끌어들이고 있었다.

"아무튼 집에 이미 있는 걸 또 살 필요도 없고 그런 데다 돈 쓰고 싶진 않아. 얼른 기절이나 해. 12시 다돼 가는데. 내일 출근 안 할 거야? 이게 지금 한 밤중에 전화할 만큼 급한 일이야?"

"아니, 난 당신 생각해서 그랬지."

"내 생각하지 마 제발. 내가 있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그냥. 가뜩이나 일도 많고 바쁜 사람이 왜 그래? 없는 부인 생각을 왜 그렇게 해? 얼른 기절이나 해!!!"


제발 내 생각 좀 하지 마라 이 양반아.

난 당신 생각 안 하는데 왜 맨날 내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거야?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냥 본인 생각만 하고 살아.

대신 충동 구매 하기 전에 나한테 검사는 맡아야겠지?

진작에 눈치챘겠지만, 나도 남편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산 지 오래야.


걸핏하면 그 양반이 하는 그 말,

"당신이 좋아하잖아."

이러시는데 도대체 내가 뭘 언제 좋아한다고 말했지?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 안 할 사람이 나인데?

나랑 자꾸 옛날여자 친구랑 헷갈리지 마시라고요.

나는 커피 좋아한다고 한 적도 없고, 수국 좋아한다고 한 적도 없고, 옷 사이즈도 100이 아니라고.


배울 만큼 배운 양반이, 알만한 양반이 자꾸 왜 이러실까?

똑똑히 기억해 둬!

나도 참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안 참을 거야.

날마다 집에서 뛰쳐나가서 커피 홀짝이면서 들어오기 전에 꽃집에서 수국 화분 하나씩 사고 덤으로 옷도 반드시 100 사이즈로 사 오고 말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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