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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29. 2023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싫어서 그런 게 아닌데

2023. 7.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여름방학 동안에는 합기도 쉬고 수영만 배우러 다니자. 나머지 시간은 할 일도 하고 실컷 놀고."

남편과 나는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으나 남매는 처음에 반발했다.

"엄마, 그냥 합기도 계속 다니면 안 돼?"

아들의 반발은 심하지 않았고, 정든 학원을 그만둔다는 아쉬움에 한마디 하는 수준처럼 보였다.

"엄마. 나는 계속 합기도 다니고 싶어. 수영은 싫어."

딸은, 그러니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약간 주저하는 편인 딸은, 역시나 예상대로 거부 반응이 심했다.

다녀보기도 전에 '수영은 싫다'고 했다.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합기도 학원 다니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거기서 만나는 친구들(엄밀히는 친구가 아니라 동생들이다, 그것도 딸을 잘 따르는 깜찍한 여자 동생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것이다.


"합격아, 너는 그렇게 OO가 좋아? 너도 동생 있잖아."

"난 여동생이 더 좋다고. 나도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거의 1년 가까이 합기도 학원에 다닌 남매는 거기서 여러 연령대의 어린이들과 친교활동을 활발히 해 왔다.

아들은 형이 없으니 이제라도 형을 낳아달라고(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 내게 보채더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학원에서 만난 형들과 제법 친하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딸은 친자매보다도 더 가까이 지내는 멤버가 몇 있었다. 그 동생들이 모두 첫째들이어서 내 딸을 마치 친언니라도 되는 양 얼마나 서로 살뜰히 챙기는지 옆에서 보면 샘이 날 지경이었다. 학원에 갈 때 만나서 같이 가자며 주도면밀하게 시간을 계산해 약속장소에서 만나고 학원이 끝나면 또 저희들끼리 어울려 놀기도 일쑤였다. 딸은 그 동생들에게 맛난 것을 사주며 야금야금 용돈을 축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너희 이제 당분간 합기도 안 갈 거라니까 애들이 뭐래?"

"그냥 수영 다니지 말고 계속 합기도 오래."

"한 달만 수영 갔다가 다시 합기도 오래."

"우리 아들 딸이 그만둔다니까 다들 아쉬운가 보다. 그래도 친구들하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야. 엄마 아빠는 수영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희들 보내는 거고. 다른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어울려서 노는 것도 좋지만 우선 너희 일이 먼저가 돼야 돼. 앞으로 살면서도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먼저가 돼야 돼.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각자 내 할 일을 먼저 하는 것뿐이야. 친구들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무조건 따라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고. 작년에 너희가 합기도 처음 갔을 때를 생각해 봐. 그때도 가기 싫다고 했잖아. 근데 가니까 여러 친구들도 사귀고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도 많이 사귀었잖아. 수영 배우러 가서도 새로운 친구들 사귈 수 있을 거야. 엄마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과연 아이들이 엄마 말을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대강 요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근데 학원 그만둔다고 어떻게 말하지?"

남편에게 물었다.

열 살, 열두 살, 두 어린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녀본 학원이었다.

이제 그만 다니겠다고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나, 난 별게 다 신경 쓰였다.

언제 학원을 보내봤어야 말이지.

그렇다면, 얘기를 한다면 언제쯤 알려야 할까?

처음 해 보는 일은 이렇게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일도 정말 별 것인 일로 만들어 버린다.

친구들에게 진작에 남매의 앞날을 예고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이미 학원에서도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너무 일찍 알리는 것도 그렇고, 너무 늦게 알려도 그럴 것 같고, 그만두겠다는 의사전달의 골든타임은 과연 언제일까?

그리고 하루 중 어느 시간대가 좋을까?

그 황금 시간대는 과연 오전이 좋은가 오후가 좋은가, 그것도 아니면 저녁때쯤이 좋은가.

이럴 때 보면 나는 세상 소심한 학부모 같다.

"꼭 전화로 해야 할까? 그냥 문자로 말하면 너무 무례한가?"

바쁜 직장인은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으므로 나 혼자만 고심했다.

"문자해도 될 것 같은데?"

별 고민도 없이 직장인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 전화는 서로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하다. 그치?"

수영과 합기도 모두 다 다니기에는 남매가 좀 피곤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자고로 방학에는 실컷 놀아줘야 하니까.

게다가 엄마에게 살림을 배우려면 여유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하니까.


"이제 너희 며칠만 가면 합기도는 끝이네. 마지막 날에는 사범님들께 그동안 잘 지도해 주셔서 고맙다고 꼭  하고 와. 알겠지? 그동안 잘 대해 주셔서 무사히 다녔잖아. 너희 생각은 어때? 뭐든 마무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야. 나중에 다시 또 다닐 수도 있으니까."

이제 그만이라고, 당분간(일지 영원히일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안녕이라고 말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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