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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10. 2023

태풍은  비상근무를 부르고

휴가고 뭐고 출근을 부르고

2023. 7.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전 직원은 즉시 담당 마을별로 태풍 피해 상황을 파악해서 산업계에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피해가 발생한 농가는 출장에 임하여 관련 사진을 첨부하시기 바랍니다.'


어디 외출 안 하고 조신하게 집에 머물러 있길 잘했다고 생각한 어느 휴일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직후 이제 공무원들이 나설 차례다.


2009년 첫 발령지에서 태풍 비상근무를 한 번 해 봤으니 이번엔 그렇게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에 휴가 중이면 어떡해요? 어떻게 출근해요?"

면사무소 물정을 모르던 내가 신규자 티를 팍팍 내며 철없이 물었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무조건 당장 나와야지. 휴가고 뭐고 필요 없어. 공무원이 그런 거 따질 때야? 그러니까 휴가 때도 연락이 잘 돼야 돼. 언제 비상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나마 조금 친해진 어느 직원에게 내가 묻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설마요! 정말 그래야 돼요? 휴가 중인데요? 진짜예요?"

라고 한 번 더 묻는다는 것은 내가 어리석은 신규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셈 밖에 되지 않을 일이었으므로 더 이상의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실제로 그 후 여름휴가 중에 비상근무가 생겨서 멀리 휴가 떠났던 직원들이 연락을 받은 즉시 최대한 빨리(그래도 기본적으로 몇 시간은 걸려서, 걸릴 수밖에 없이) 사무실에 도착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장님, 저 글임자입니다. 혹시 동네에 태풍 피해는 없으세요? 동네 분들 중에 피해 본 농가가 있으신가요?"

내 담당 마을 세 곳(다 합해서 세 군데였는지 어쨌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에 차례로 이장님들께 전화를 했다. 일단은 전화로 상활황 파악을 한 다음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하면 직접 출장을 나가면 된다.

"응, 나도 몰라. 이제 나가 봐야지."

이렇게 태평하게 전화받으시는 이장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다 속이 탄다.

"아니, 이장님! 지금 방안에만 계시면 어떡해요? 얼른 동네 나가보셔야지요. 이장님이 안 하시면 누가 해요? 얼른 둘러보고 저한테 알려 주세요, 어서요!!!"

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도 아니 되었다.

여전히 바람도 많이 불고 어떤 위험성이 있으므로 무작정 이장님께 어떤 의무를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 마을 담당자인 내가 마을을 돌며 상황을 살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단 유선상으로 피해 상황을 접수하고 혹시라도 이상이 있는 마을이 있으면 그때 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피해가 생긴 사실이 발견되면 이장님이 먼저 내게 전화를 주신다. 한 번 태풍이 휩쓸고 나면 그 후 며칠 동안은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전화 통화라도 한 번에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전화를 걸고 걸어도 통화가 되지 않는 이장님이 있다.

물론 바쁘게 마을을 돌며 혹시라도 피해가 없는지 살피시느라 바쁘게 움직이셔서 그렇다.

"이장님, 통화가 안되시네요. 혹시 무슨 일 있으시면 연락 꼭 주세요.꼭이요."

나만 다급한 문자를 남기고 계속 또 통화를 시도해야만 한다.

공무원들에게 든든하게 도움을 주시는 고마운 분들, 동네 이장님들이시다.

다행히 그 해에는 내 담당 마을에서 모두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나약해지고 한없이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아무리 잘난 체하며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해도, 거스를 수 없는 비상상황이 닥칠 때면 벌벌 떨며 가슴 졸일 수밖에 없는...

지긋지긋했던 폭우에, 연일 지속되는 폭염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 없는 기막힌 상황에서 아무리 그 무리 중에 일부가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하고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해도, 그래도 여전히 그렇지 않은 선량한 이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 태풍이 온다고 야단이다.

안와도 되는데,

우린 그렇게 볼 일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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