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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18. 2023

TMI의 시간은 찰나로 간다...

3시간은 기본이죠

2023. 8. 17.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런데 아빠, 너무 오래 말하는 거 아니야?"

급기야 딸이 제동을 걸었다.

"어? 얼마나 얘기했지?"

남편이 천연덕스레 물었다.

"얼마 안 됐어. 3시간 밖에 안 지났어."

그의 평정심을 유지해 주고자 내가 말했다.

3시간 그까짓 거 눈 한번 깜짝할 시간 밖에 더 되나.

그것도 한쪽만 찡긋할 찰나의 시간.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애초에 출발선을 잃은 남편이 나머지 세 멤버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미 정착할 곳을 잃은 어린 두 멤버는 대답조차 할 여력이 없었다.

"외상 얘기하다가 그랬잖아, 외상!"

이럴 때 출동할 사람이 필요해서 사람이 결혼을 하는가 보다.

한 사람이 저지르면(?) 나머지 한 사람은 수습할 요량으로 말이다.


"외상이 뭐야?"

삼각산도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출 것 같은 광복절에 책을 보다 말고 아들이 물었다.

누구에게라는 구체적인 대상은 없었다 물론.

"돈을 주고 물건을 사거나 뭘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다음에 주겠다고 하고 그때 바로 돈을 안주는 거야."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내가 잽싸게 발언권을 얻었다.

남편도 동참했다.

동참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동참이 일장연설로 이어지고 말았다.

나머지 세 멤버가 우려했던 안타까운 일이 또 현실로 나타났다.

그 시각 '이지 잉글리시(Easy English)가 오디오어학당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나의 노동요는 언제나 오디오어학당이다.) 마침 광복절을 맞이하여 요긴한 관련 표현도 등장했다.

기회만 됐다 하면 나는 은근슬쩍 어린 두 멤버를 대상으로 뭔가 주입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일을 일삼고 있었고, 어떤 성인 멤버는 식탁에 앉아 무언가 저작활동을 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니까 뭘 잡수고 계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다가 마침 광복절 얘기에 우크라이나가 나왔고, 딸에게 그 나라를 한 번 찾아보라고 했다.

제 방에서 지구본을 들고 와 굴리고 또 굴렸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나까지 출동해서 매달렸지만 뉴스 기사로 들어보기만 했지 지도에서는 한 번도 찾아본 적 없는 나라였다.

어느 순간 눈이 침침해 자꾸만 엄지와 검지로 확대를 하려는 나를 제지하며 딸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엄마, 지금 뭐 해? 이게 무슨 핸드폰이야?"

"안 보여서 그래? 글씨가 너무 작다. 습관이 돼서 말이야. 이렇게 확대하면 잘 보일 것 같은데."

보다 못한 성인 멤버가 저작활동을 멈추시고 벌떡 일어나셨다.

"안 되겠어. 그 세계지도 좀 줘 봐. 그거 펼쳐놓고 찾아보자."

그 한마디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딸을 데리고 세계 일주를 했다.

남의 나라 식민지 역사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신 전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찾아 동영상을 보여주고 남북관계의 현주소라든지 외국의 이민정책 등등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각종 분야를 총망라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세 멤버가 적극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았었다.

보통 이런 식이다, 그 성인 멤버는.

"우리 얼마동안 얘기했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아니면 어린 멤버들이 평소에 말이 길어지면 따분해하던 것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시계를 쳐다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벌써 가 아니다, 충분히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하여튼 아빠랑 얘기하면 너무 길어져."

딸이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빠는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두 어 시간 정도 또 찰나의 낮잠에 빠지셨다.

TMI의 끝은 언제나 낮잠이다.

감출 수 없는 TMI 본능, 타고난 TMI 우월한 유전자, 그는 다 가졌다.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이렇게 다 가지면 불법 아닌가?

그나저나 우크라이나는 찾긴 찾았었나?


(*낮잠에서 깨시고 저녁에 한 차례 복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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