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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04. 2023

그건, 자식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

차라리 안해야 할 말

2023. 9. 2.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도 이러면 정말 당신이랑 같이 살기 싫어!"

갑자기 그 얘길 왜 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제발 같이 살아달라고 애걸복걸한 것도 아닌데 뜬금없었다.

"누군 좋아서 같이 살고 있는 줄 알아? 누가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정말."

과거의 나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하는 데에 기운 빼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 상황에서 할 소리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옆에서 '다' 보고 듣고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무리 아내가 꼴 보기 싫어도, 아무리 결국엔 남이라지만, 같이 안 살때 안 살더라도그런 말은 좀 삼가야 한다고 난 생각해 왔는데 말이다.


"최소한 애들 앞에서는 할 말 안 할 말 구분했으면 좋겠다. "

이 말 말고 나는 달리 더 할 말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구구절절 다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끼고 있다. 상대의 말에 동의해서도 아니고, 무작정 비난하는 투로 말하는 그 태도를 내가 전적으로 인정해서도 아니다 결코.

내가 잘했다고 한 적도 없는데 "뭘 잘한 거 있다고 그래?"라면서 따지질 않나, 무조건 내 마음대로 하고 살고 있지도 않은데 "뭐든지 본인 마음대로만 다 하고 산다."는 말로 성급하게 판단하질 않나, 걸핏하면 "정말 당신이랑 살기 싫어." 이런 말을 일삼질 않나.

남편이 너무 좋아서 죽고 못살아서 지금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피차 정 같은 것도 미련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함부로 하는 말들이 내 생각엔 지나친 것 같다.

나도 철없을 적에 싸울 때는 그리 듣기 좋은 말도 아닌 것을 아이들 앞에서 별생각 없이 하곤 했다.

내가 왜 남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느닷없고 황당하고 상식적으로 이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공격을 받을 때 그때는 나도 맞받아치고 싸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미련하게도 그땐 그런 생각조차도 못했다.

아마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듣고 그대로 따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들었던 강의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자식들에게 엄마가 아빠 흉을 보면 그 아이들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는 셈이 되고 결국 그 아이들은 나쁜 사람의 자식들이라는 말 밖에 안된다. 엄마나 아빠는 아이들 앞에서 상대방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나쁘게 보였다.

안 좋게 생각됐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부당해 보였다.

그러니까 곱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비난하는 말만 하고 대놓고 함부로 말하고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단정 짓고 걸핏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푸념하듯 하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리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는 말은 더더욱.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파문이 이는 물처럼, 누군가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싶어서 탓하고 싶어서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도 감당할 수 없는(감당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높이의 파도로 다가올 때가 있는 법이다.

나도 예전에는 상대방의 불만스러운 점만 끄집어내고 트집 잡고 득달같이 달려들 때도 있었다.

한때다.

젊었을 적 얘기다.

그런 젊음이 지금 내겐 없다.

엉뚱한 곳에 기운을 빼지 말아야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게 다 무슨 소용 있나 싶었다.

싸울 기운도 아끼고 싶다.

싸울 거리도 아니다.

싸울 일도 없다.

그건 싸움도 무엇도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한 명이 쏟아붓고 나머지 한 명에겐 난데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붉그락푸르락해지는 얼굴이 있다.


"남 얘기 하지 말고 본인만 잘하면 돼."

내가 할 말은 그뿐이었다.

"지금 잘하면 내가 그래? 제대로 좀 해. 이게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제대로'와 '잘'사이에서 어리둥절해졌다.

나도 하고 싶은 오만가지 말이 있다.

그래도 다 쏟아내지는 않는다.

'이럴 때 나도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우리 부모가 그랬으니까. 저럴 땐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우리 부모도 그렇게 다 하던데? 그럴 땐 그렇게 해도 돼, 나도 부모가 그렇게 하는 거 보고 배웠어.'

만에 하나 두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봐, 그게 가장 염려스럽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왕이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시 숨을 고를 필요도 있어 보인다.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좀 제대로 하고 살아!"

어제 그런 말을 또 들었다.

나야말로,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내에 대한 불만을 자식들 앞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표출하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다.

내 앞가림이나 잘하고 살아야지.

남을 보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할 테니까.

안 그러려고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이 날 때는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이내 곧 사과를 하는 어리석을 짓을 무한반복하고 산다.

사람인데,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냥, 나는 훌륭한 엄마도 아니고 대단히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안 좋다는 것은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좋다는 것은 다 못해줄망정 안 좋다는 것만이라도 줄이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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