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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8. 2023

1인 1 집게, 면사무소 머스트 해브 아이템

면 소재지  집중공략

2023. 9.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추석 명절을 맞이해 오늘 오후 2시에 면소재지 쓰레기 줍기를 할 예정입니다. 전 직원은 적극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 왔다, 메일이.

명절 휴가비는 한 번만 입금됐지만 명절 관련 메일은 복리로 도착한다.

아,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지 않으면 된다.


"자, 이거 껴라."

라고 말씀하시며 살뜰히 챙겨주는 주사님이 계셨다.

그분의 손에는 반쪽 면만 새빨갛게 코팅이 된 면 장갑이 들려 있었다.

나를 제외한 많은 직원들이 면사무소 근무에 없어서는 안 될 만능복인 그것, 코팅된 면장갑보다 더 빨간(당시에 그곳의 산불복은 빨간색이었고 최근 몇 년 전에 다른 색으로 바뀌었다.) 산불복을 잽싸게 걸치고 계셨다.

나만 속 빼고.

나는 이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돼서 그 귀한 아이템이 있을 리가 없었고 짐짓 소외감마저 느꼈다.

"아, 임자는 산불복이 없겠구나. 얼른 그거 신청해라."

뭘 신청하라고 하긴 하시는데 그게 또 무슨 소린고?

신규자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런 일 할 때도 입고 산불 비상근무 할 때도 입고 여러 가지로 입을 일 많으니까 당장 신청해."

"네."

어디에 뭐라고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냅다 대답을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듣고야 말았다.

'산불 비상근무'

뭔지는 몰라도 '비상'이라는 단어까지 들어간 걸 보면 꽤나 뭔가가 있을 것만 같다.

그 비상사태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집게나 챙기고 장갑이나 끼자.


"근데 뭐 하러 가는 거예요?"

조신하게 따라다니며 하라는 대로 하기나 할 것이지 또 꼬치꼬치 캐묻고 말았다.

"메일 안 봤어? 추석이라고 쓰레기 주우러 간다니까."

한다면 하는구나.

결국 쓰레기 주우러 나가는구나.

아, 이런 것도 하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명절이 다가오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울력'을 하며 청소도 하고 마을을 새 단장하는 풍경을 많이 봐왔으므로 심상하게 넘겼다.

게다가 나도 어릴 적에 환경 미화활동이란 것을 해보지 않았던가.

그런 비슷한 것이려니 했다.


분명히 메일로 오후 2시에 전 직원이 쓰레기 줍기를 하겠다고 공지했으나 어리바리한 신규자는 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겨우 출근 2주째였는데 매일 신상 업무(라기보다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가 쏟아지고 쏟아졌다.

물론 나는 그 모든 일에 '이트 어답터'였고 말이다.

"밖에 나가 봐.(=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뭐 하고 있어?), 거기 집게 있으니까 들고 와.(=또 눈치 없이 달랑 네 것만 가져오면 안 된다, 우리 계 직원들 수에 맞게 가져와야지.), 쓰레기봉투도 챙겨 오고.(=봉투를 들고 다니게 될 사람은 아마 네가 될 거야. 너 당첨됐어, 축하해.)"

신규자는 발령 이래 처음으로 면소재지 나들이에 나섰다.

물론 '쓰레기 줍기'를 빙자한 거리 정화 활동이었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바람 쐬는 기분도 들어 괜히 들떴다, 속도 없이.


마을 청년회 일동들이, 혹은 마을 주민들이 내 건 '향우님들의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배너가 사방에 걸렸고, 다음 선거를 노리고(?) 틈새시장을 공략해 더 잊히기 전에 얼굴 한번 더 내밀어 주는 전의원, 전조합장 등의 인사말씀을 원 플러스 원으로 구경하며 명절이 코앞이란 걸 실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여기저기서 직원들에게 오만가지 설명을 들으며 줍고 또 주웠다.

길거리에 담배꽁초는 왜 그리도 많이 떨어져 있던지, 나는 껌종이 하나라도 버린 적이 없지만 그 많은 쓰레기들은 다 누가 버렸을까.

이 정도면 '쓰레기 주인 찾아주기 운동'이라도 당장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모든 물건은 원 주인에게로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9월 중순이었고, 여전히 햇볕은 따가웠다.

할당량을 해치우고 나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전리품을 얻었던가?

그것도 막대가 아닌 자기마치 콘으로 .

쓰레기 줍기를 마치고 달궈진 얼굴로 사무실에 복귀한 신규자는 마침내 다짐을 했다.

언제 갑자기 동원될지도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챙이 넓은 모자와 긴팔 옷을 당장 챙겨 와야겠다고.

그 일을 실행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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