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 일급비밀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안 했다, 그 지역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계신 나의 친척도.
공무원 생활은 화수분이다.
자꾸자꾸 어떤 느닷없는 것들이 나오고 나온다.
'공무원은 명절 비상근무라는 것을 하므로 공시생 여러분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라고 최소한 수험서 맨 앞표지에 별표 5개쯤은 해서 굵은 글씨체로 눈에 띄게 해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은 나만 하고 있었나 보다.
"명절인데, 공휴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다 쉬는데, 그런데 출근해야 되는 거예요?"
라고 세상 순진한 소리를 했던 나를 보며 콧방귀 뀌는 직원들을 분명히 보았다.
"원래 공무원은 그런 거야. 아무튼 이번엔 네가 추석 때 근무 좀 해라. 별일 없지? 일 있으면 얘기하고."
별일 있어도 없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일이 있어도 없던 걸로 해야 할 것만 같다.
그 면사무소에서는 나만 유일한 미혼녀였으므로, 명절 전날부터 시가에 가야만 하는 의무를 진 공무원 며느리들은 추석 당일에는 도저히 근무할 수 없다고 내게 확실히 선을 그었다.
물론 나는 당시 기웃거릴 시가가 없는 혼자 몸이었으므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라면 해야지 어쩌겠나.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기껏해야 집에서 엄마를 도와 밥상만 차렸다가 치우고 차렸다가 치우기를 무한 반복하게 될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차라리 출근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 메일은 명절을 일주일 정도인가 앞두고 도착했다.
'추석 명절 비상 근무조 편성'이라는 제목으로 내게 온 메일을 보고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리라고 예상했어야 했다.
이것도 처음 보는 것이니 또 여쭤봐야 한다.
"주사님, 이거 메일로 왔던데 뭐예요? 어떻게 해야 돼요?"
"날짜 별로 한 명씩 넣어."
2주째에 접어든 공무원 생활에서 겨우 하나 터득한 게 있다면 뭔가 요구하는 내용의 메일을 받으면 그 계의 가장 막내(다행히 나이상으로도 서른 살의 내가 가장 막내였다. 막내 하기 딱 좋은 나이다 물론.)가 취합해서 제출해야 한다는 눈치를 챈 것이었다. 발령받고 이제 2주 째인데 그런 요긴한 직장생활 꿀팁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다니 내가 다 신통방통 하기까지 했다. 물론 끝을 모르게 자꾸 다른 직원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민망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남달랐던 나는 제일 먼저 계장님을 찾아갔다.
"계장님, 혹시 이 날 중에 언제 근무하실 거예요?"
라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불호령 같은 말을 들었다.
"거기에 계장님을 왜 넣어? 계장님은 빼야지. 아이고 이것아."
"계장님은 왜 빼요?"
어리바리한 신규자는 '그런 일'에 계장님씩이나 되는 분을 감히 근무조로 편성하는 일을 적극 추진하려는 무모함을 다 보였다.
"계장님은 빼고 우리끼리 편성해."
아, 계장님은 명절 비상근무를 안 하시는구나.
미리 말을 해줘야 알지, 내가 처음 해 보는 일인데 무슨 재주로 어떻게 알겠는가.
성가신(?) 근무나 자잘한 근무에는 계장님은 일단 제외라는 점을 미처 몰랐던 센스빵점의 신규자는 너무 무안했다.
일단 각 계에서 1차로 근무조를 짜 보고 전 직원들끼리 다시 날짜 조정에 들어간다.
다른 날짜는 희망하는 직원이 겹치기도 했지만 추석 당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날인 것인지 단번에 내가 근무자로 당첨됐다, 다른 남직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