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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5. 2023

명절 휴가비를 492,060원이나 받은 9급 신규자

웬 떡값이야

2023. 9.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임자씨도 명절 휴가비 들어왔겠네. 얼마나 들어왔어? 확인해 봐."

이 얼마나 친절한 분인신가.

"그게 뭔데요?"

태어나 처음 공무원을 해 본 9급 신규자는 분명히 한글로 하는 그 말씀을 못 알아듣고 다시 반문했다.

"내일모레 추석이잖아. 그걸로 추석 쇠라고."

아, 그렇구나.

그때까지 전혀 안정적이지 않은 곳에서만 거의 일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었다 나는.

직장인이 좋긴 좋구나.

난 일 한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뭘 주신다고요?


"명절 휴가비 들어왔네."

고요한 초가을날, 거룩한 어느 아침나절에 어디선가 한 선구자가 외쳤다.

"어? 그래?"

이러면서 그의 뒤를 따르는 무리가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저게 무슨 소린고? 하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공문만 이리저리 뒤적이며 '일하는 척'했던 신규자도 있었다.

월급날도 그렇지만 누군가가 '월급이 입금됐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면 너도나도 은근히 입금내역을 살펴보는 직원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입출금 내역을 확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소한 10만 원의 벌금에 처해지리라는 것도.

공무원에게는 월급과 명절 휴가비와 정근수당과 연가보상비를 제때 확인해야 할 중요한 의무가 있다.

그나마 직장인의 낙 아닌가.

비록 입금과 동시에 자취를 감추기 일쑤인 그런 사이버머니 같은 성격의, 내 손에는 잡히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숫자지만 그 순간만큼은 직장인에게 기쁨을 주는 게 확실하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명절 휴가비가 얼마나 들어왔나 하고 일제히 주위에서 그 금액을 확인하는 단체행동을 하실 때, 아는 것은 없지만 고급 정보도 입수했으니 나도 그에 동참해야만 할 의무를 느꼈다.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오리라고는(그때는 나도 참 순진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 어쩌면 난 그렇게 큰걸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생각도 못했는데 (그럴리는 없지만) 길 가다가 돈을 주운 기분이었다.

합격을 해서 출근을 했고, 일 하라고 해서 했는데, 명절이라고 휴가비까지 챙겨 주다니, 이 당연한 일에도 신규자는 감지덕지였다. 꾀제제한 공시생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돼 세상 물정도 물랐거니와 (특히 금전적인 면에서는) 무소유의 삶을 일관되게 살아왔으므로 그 돈은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다 순진했을 적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공직생활을 시작하고 첫 명절휴가비를 받은 유별난 감회일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100만 원을 훌쩍 더 넘게 받고도 그때는 콧방귀도 안 뀌었지만 2009년 당시에는 자그마치 50만 원에 가까운 그 거액에 나는 다시 한번 '공무원 된 보람'마저 느꼈다.

솔직히 일하면서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한다거나, 도저히 못하겠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은 해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나름대로 힘들 때도 있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건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근무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추석이라고 저렇게나 많은 휴가비를 준다는 거야?

정말 이게 웬 떡값이냐.

간헐적 파트타임으로 근근이 생활해 오던 공시생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엿한 직장인이 돼서 그런 보너스(?)도 다 받아보네?

물론 나만 받은 게 아니라 전 직원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다 받은 거였겠지만 통장에 찍힌 그 입금 내역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그 뻔한 거짓말을 나는 그때 처음 '실감할 뻔'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가진 게 없이 살아서(벌이가 없는 신분의 공시생은 당연히 없는 게 맞긴 하지만) 그런지 그 명절 휴가비를 받고 나는 얼마나 감개무량했던가.

어떻게 하면 그 돈을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굳이 소문낼 것까지야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금액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은 금액도 결코 아니었다.


아마 나는 당장에 남자친구에게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명절 휴가비가 50만 원이나 들어왔어!"

몇 푼 모자란 50만 원이었지만, 수학에 약한 나였지만 가볍게 반올림해 주는 센스를 발휘하며 직장인이랍시고 그에게 얼마나 우쭐댔던가. 당시 그는 발령 나기만을 기다리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한 달 보수보다 한 달도 채 일 안 한 나의 명절 휴가비가 더 많다고 오두방정을 떨었을 것이다.

그곳은 명절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명절 휴가비를 줬다.

닥쳐 올 명절 증후군이고 뭐고 그냥 명절 일주일 전이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그때만은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아보다도, 곧 출현하게 되신다는 미륵 부처님보다도 더 간절히 기다려지는 게 그 성스러운 명절휴가비였던 것이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 이젠 더 이상 명절이라고 떡값 들어올 곳 하나 없는 '얼리 퇴직러'는 통장 정리를 하다가 불현듯 명절 휴가비를 다시 보게 됐다.

가만 보니 그 50만 원의 명절 휴가비가 지금에 와서 다시 거금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남편은 도대체 명절 휴가비를 얼마나 받은 게지?

순순히 자백을 하지 않는다...

너의 명절 휴가비를 네 아내에게 알리지 말라,

특명을 받은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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