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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30. 2023

형님이 아니라 동생

이런 시동생

2023. 9. 27 .

< 사진 임자 = 글임자 >


"누나. 이제 내가 할게."

한 젊은이가 내 옆에 바짝 다가섰다.

여기서 누나라 함은 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젊은이의 누나, 그러니까 나에게 시누이가 되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 나 도저히 안 되겠다. 가서 좀 쉬어야겠다."

그 젊은이의 누나는 자연스레 빠졌다.

그 와중에 묵묵히 설거지 한 그릇을 조신하게 헹구는 이는 단연 나 혼자였다, 물론.


"제가 할게요. 어차피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 젊은이의 시동생, 그러니까 그에겐 '형수'라는 사람이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시동생에게 말했다 이거다.

"같이 해야 빨리 끝나죠."

시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몽글몽글 거품난 수세미로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냥 혼자 할게요.(=그냥 나 혼자 하는 게 속 편하다.= 진심으로 양도 얼마 안 남아서 충분히 혼자 해치울 수 있다.= 옆에 누가 있는 거 신경 쓰인다.= 지금 내 옆에 서 있어야 할 남정네는 시동생이 아니라 그 시동생의 형인 내 남편이어야 마땅하지 않으냐?=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솔직히 불편하다.= 혼자 하고 싶다.)"

난데없이 시동생이 제 누나와 바통 터치를 하는 바람에 어색하게 2인 1조로 설거지를 하게 됐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시누이는 요즘 여기저기 몸이 안 좋다고 했다.

아파 본 사람은 그 속 안다.

지금 설거지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도 몸이 아플 때는 만사가 귀찮아지므로,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결정적으로는 애초에 나한테 다 떠넘긴 게 아니라서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쉬는 게 날 도와주는 거다.

게다가 추석날 우리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먼저 어머님과 뭔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굳이 누가 먼저 왔고 누가 더 많은 일을 했느냐를 따진다기보다) 설거지 그까짓 것 나 혼자 한다고 해도 무방할 일이었다.

'겨우' 11명이 먹은 점심 밥상을 치우는 일이었다.

친정에서는 기본이 17명이었으므로 시가에서 하는 설거지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10분, 20분, 시간은 흘렀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동생과 나는 거룩한 침묵 속에서 설거지만 묵묵히 했다.

이렇게 어색할 데가.

그래도 형수 생각해서 같이 설거지씩이나 해 주겠다니.

이런 시동생 또 없습니다.(라고 믿고만 싶다.)

참해, 볼수록 참해.

이런 젊은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아내와 가사를 공동으로 잘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이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다."

이런 기본 정신을 갖춘 남자,

처음 봤다.

처음 들었다.

그 젊은이의 친형과 같이 살면서 그런 경험이 있었던가 싶게 까마득했으므로, 전생에서라도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도통 기억나지 않아서.

낯설기만 했다 나는.


가족이 무엇인가.

정이 무엇인가.

배려는 또 무엇인가.

그 젊은이 덕에 설거지를 조금 일찍 끝낼 수 있었던 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오늘 엄마가 낮에 설거지하는데 삼촌이 와서 같이 해주시더라. 엄마가 혼자 하겠다고 했는데 '같이 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면서 설거지하는 거 있지. 너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남이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같이'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행동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이런 훈훈한 미담 사례를 '굳이'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나는 언급했다.

사방이 고요해 누구 하나 그 말을 절대 놓칠 리 없는 그 시간에 말이다.

"엄마, 나보고 지금 설거지하란 소리야? 엄마는 내가 한다고 해도 말리잖아!"

"그건 네가 아직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그릇이라도 깰까 봐, 그러면 다치고 그러니까 그런 거지. 집에 플라스틱이 거의 없어서 잘못하면 깨지기 쉽거든. 우선 플라스틱 그릇부터 설거지해 보자.10살이면 이제 너도 슬슬 시작해야지. 공부는 안 해도 설거지는 해야 해. 먹었으면 설거지도 당연히 해야 하는 거야!"

나도 나름 단계별 살림 비법을 전수하려고 머리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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