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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01. 2023

7년을 기다렸다.

고속도로 레이트 어답터

2023. 9. 3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신 있어?"

"......"

"진짜 자신 있냐고?"

"자신 있어서가 아니야. 한번 해 볼게."

"혼자 가는 거면 나도 아무 말 안 해. 근데 어머님 아버님이랑 애들까지 다 태우고 가는 거잖아."

"그렇다고 맨날 집 근처만 다닐 수는 없는 거잖아. 해봐야 늘지."

"그럼 먼저 가는 길부터 미리 알아봐. 이리 와 봐."


꼭 다정해서라기보다, 난생처음 고속도로씩이나 운전하게 될 '나 때문에' 남편은 나를 옆으로 불러들였다.

꼭 좋아서라기보다, 당장 아쉬운 사람이 나니까 그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애들까지 태우고 어딜 간다는 거야? 운전 자신 있어? 고속도로 한 번도 운전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간다고 그래?"

"처음 하는 건 다 처음인 거지. 그러는 당신은 처음에 차 샀을 때 뭐 운전 자신 있어서 혼자 한 시간 차 끌고 왔어?"

내가 해 놓고도 참으로 그 상황에 적절한 반론이 아닐 수 없다고 스스로 기특해했다.

내가 언제 운전에 자신 있다고 입이라도 뻥끗한 적이 있었던가?

"템플 스테이 한 번 가고 싶다."

라는 말은 드물게 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그런 말을 혼자만 했다가 차마 듣지 않았으면 좋을 말만 들었던 터였다.

맹세코 내 운전에 자신이 있어서 여행을 가겠다는 게 아니다.

이제, 한번 정도는 나 혼자 운전하고 도로 위를 달릴 만한 시기가 되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물론 남편 말마따나 부모님과 아이들까지 동행하니까 조금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허나, 그렇다고 평생 30분 거리 이내만 뱅뱅 돌면서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차를 왜 샀느냔 말이다.

내가 사달라고 사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차가 있어야지. 특히 애들 있으면 엄마들은 더 필요하다던데."

이렇게 말하면서 당장에 한 시간 거리를 달려 한대 저지르고 오신 분이 누구였더라?

차가 사고 싶어 근질근질해서 결국에는 저지른 사람이 누구였냐고, 이제와 아무 소용없는 말을 나는 수 백번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운전에 자신 있어서 초반에 그렇게 규칙적으로 사고를 내셨수? 한 번은 사고 나서 고치는 데 돈이 얼마 들었더라? 그리고 그 돈의 출처가 어디였더라? 내가 1년 동안 착실하게 적금 부은 천만 원 중에서 갖다 썼잖아. 내가 그러려고 조신하게 적금 부었는 줄 알아? 그다음번 사고에는 또 어땠지? 그땐 결국 폐차해 버렸잖아. 그리고 차 다시 산다고 또 내가 1년 동안 잘 모아 놓은 적금 그거 천만 원도 모조리 다 갖다 샀잖아. 갈수록 운전을 더 못하는 것 같더구먼 지금 누가 누구한테 설교하는 거야?"

라고 말해 버리면, 홧김에 있던 차도 헐값에 팔아치워 버릴 것 같아 '굳이'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타고 다니라고 산 차니까, 있으니까 타겠다는 건데, 게다가 고속도로가 있으니까 이용하겠다는 건데, 왜 그걸 못하게 하느냐 이 말이다.

물론 남편이 염려하는 부분은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운전하겠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봐. 꼭 가야 하는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애들이랑 부모님까지 있는데?"

"그러니까 내가 더 조심하지."

"운전은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알면서 그래?"


안다 , 잘.

섣불리 결정한 것도 아니다, 물론.

그래도,

이제는,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고 가겠다, 남편은 절대 안 된다, 이렇게 이틀 정도 서로 날이 서 있었다.

진심으로 남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모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고속도로 운전도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늦어지면 아마 더 겁이 날 것도 같았다.

그래서 더 미룰 수가 없었다.

미루고 싶지 않았다.

미루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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