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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5. 2023

가뿐하게 7시간

이런 떡잎

2023. 10.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내가 거북이를 다 접었는데.(=어머니, 어서 와서 그 현장을 확인하시지요.)"

아들이 요양 중인 내게 와서 말했다.

피곤해도 일어나야만 한다.

"세상에, 그 어려운 걸 다 만들었어, 벌써?"

호들갑은 덤이다.


그러니까 그 거북이는 일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거의 7시간에 걸쳐 완성한 아들의 집념의 결과물이었다. 내 아들은 접는다면 접어버리는 녀석이다.

"엄마. 나 새 책 왔으니까 이번엔 거북이를 접어 볼래."

문제집 한 권을 끝내고 선물로 받은 종이접기 책이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집에 도착한 날 아들은 내게 선포했다.

며칠 전 누가 봐도 책이 분명한 형상의 포장물이 현관 앞에 떨어져 있었을 때 나는 직감했다.

그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고작 주문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이게 과연 뭘까? 혹시 우리 아들 책 아닐까?"

나는 종이접기 책이라고 확신을 하고 아들에게 미끼를 던졌다.

"에이, 엄마, 아무리 그래도 어젯밤에 주문했는데 벌서 올 리가 있겠어? 아니겠지."

아들은 그래도 최소한, 택배는 빨라야 이틀 만에 도착한다는 것쯤은 아는 어린이였다.

"올 수도 있지. 빠르면 그다음 날 바로 오기도 하거든. 한 번 봐 보자."

득의양양하게 내가 포장지를 뜯고 그 실체를 드러내자 딸이 더 야단이었다.

"우와, 진짜 벌써 왔네. 야! 진짜 종이접기 책이 왔어!"

그동안 시큰둥하던 아들이 냅다 내게 달려들었다.

"엄마 진짜야? 어디 봐봐. 진짜 맞아?"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것을 손에 넣고 아들은 기쁨에 들떴다.

한동안 종이접기 하는 일에 시들하더니 다시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북이는 보기만 해도 복잡한데 어렵지 않을까?"

지난번에 고슴도치를 접다가 절망한 것처럼 아들이 하다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내가 슬쩍 한마디 했다.

"엄마. 그래도 해 보는 게 낫지. 하다가 실패하면 마는 거지. 한번 해 볼래."

다소 저돌적이기까지 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사람들이 살면서 후회하는 게 했던 걸 후회하는 것보다 안 해본 것을 더 후회한다고 하더라. 네 말대로 하다가 안되면 그만이지 뭐. 일단 해 봐. 우리 아들은 이렇게 도전정신이 강하다니까. 뭐든 시도해 보는 건 좋은 거야. 미리 겁먹고 포기하는 것보다 백 배는 낫지."

"그럼. 아무튼 기대하고 있어요, 엄마."

물론 기대는 한다.

어른인 내가 보기엔 도통 알아볼 수도 없는(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것들이, 봐도 봐도 모르겠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이 종이 접기다. 그저 나와 아들은 관심사가 다를 뿐인 거다.

"엄마 봐봐, 이만큼 접었어. 이 주름 좀 봐."

중간중간 내게 경과 보고 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많은 주름을 잡은 거야? 엄만 책을 보면서 따라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은데 우리 아들은 잘하네."

전혀 관심이 없으니 아들이 설명하는 것도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들은 한참 동안 신나게 내게 설명을 했지만 진심으로  잘 모르겠다.

"엄마, 엄마는 아들이 말하는데 별로 집중을 안 하네? 나를 보고 집중해서 봐야지."

"어, 그래, 미안. 알았어."

아들과 흔하게 하는 대화가 바로 저런 종류의 것이다.

눈으로는 아들을 보면서 오늘 점심은 또 뭘 차려내야 하나, 솔직히 그 마음이 더 컸다.

그러면 안 된다던데, 아이들이 말할 때 온 마음을 기울여 경청하라던데, 하지만 항상 내게 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얘기를 다 들어주자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들 옆에 꼭 붙어 있어야만 한다.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인데, 솔직히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듣곤 한다. 가끔 이 애들이 엄마인 나를 혼내려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다 있다.


"엄마, 이것 봐봐요. 뭐가 달라졌게? 아까랑 완전히 다르지?"

"글쎄, 엄만 잘 모르겠는데?"

"잘 봐봐. 이걸 왜 몰라? 이것 봐 주름이 다르잖아, 이렇게!"

다르다고 하니까 그제야 다르게 보인다.


"아들아, 넌 종이 접기가 재미있고 관심이 많아서 그걸 하면 즐겁고 좋겠지만 엄마는 솔직히 관심이 별로 없어. 그런데 넌 무조건 엄마한테 무관심하다고 집중도 안 한다고 그러면 이 엄만 정말 섭섭하다. 사람이  관심사가 다 다른 거지. 네가 좋아한다고 해서 엄마도 무조건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잖아!"

라는 아들의 의욕을 꺾는 말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물론.

점심도 간단히 똑딱 해치우고 아들은 계속 거북이를 탄생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덕분에 나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럴 땐 아들에게 종이 접기가 취미라는 게 눈물 나게 고맙다.

딸도 스토쿠를 몇 시간째 하느라 조용했다.

너무 적막하기까지 해서 딸이 좋아하는 '숭어'를 틀었다.

남편은 일이 많아 일요일에도 출근을 했고 각자 우리 네 멤버는 할 일에 집중을 했다.


"엄마 드디어 완성이야. 그럼 엄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가 당장 보러 가야지."

집중력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타고난 어린이라고 느낄 만큼 종이접기를 할 때 아들은 모든 집중력을 끌어다 쓴다.

"어른도 이렇게 만들라고 하면 하기 힘들 텐데 정말 대단하다. 정말 진짜 거북이 같아. 이거 접기 어려웠을 텐데 안 힘들었어?"

"그냥 할 만했어."

아들은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집중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중에 뭐라도 하긴 하겠어.

하긴 6살때부터였던가. 처음 종이접기를 시작할 때도 두 세 시간은 기본이었지.

잠시 스토쿠를 멈추고 딸이 말했다.

"솔직히 진짜 같지는 않은데? 눈도 없잖아!"

"눈이 없긴 왜 없어? 여기 있잖아, 눈! 이게 눈이라고."

과연 부릅뜬 거북이의 눈이 양 옆에 달려 있었다.

좀 전까지 나는 거북이의 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는데 그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눈도 다 만들었네. 어쩜 우리 아들은 이렇게 솜씨가 좋을까? 정말 대단해. 거의 7시간 동안 만든 거잖아."

"별로 안 힘들었어. 시간이 걸리긴 했는데 그래도 포기 안 하고 하니까 다 접었지. 역시 하길 잘했어."

"그래. 하니까 정말 됐네. 이따가 아빠한테도 보여주자. 종이는 얼마나 큰 걸로 한 거야? 딱 아기 거북이 사이즈네."

"50센티짜리로 했지. 다 접으니까 이렇게 작아졌어."


저녁 6시가 넘어 퇴근한 남편에게 다짜고짜 나는 말했다.

"우리 아들이 정말 집중력 하나는 대단해. 엄마 닮았나 봐. 이 거북이 한번 봐봐."

순순히 인정할 남편이 아니었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닮아서 그렇지."

내가 보기엔 딱 나를 닮았는데 그는 부인하고 싶어 했다.

"얘들아, 솔직히 말해봐. 엄마가 집중력이 좋아, 아빠가 좋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아우르는 그 유치 찬란한 대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를 능가하는 질문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의 발언을 바로잡고자 출동하는 종이 접기의 달인이 한 명 있었다.

"근데, 엄마. 이건 그냥 거북이가 아니라 정확히는 '바다 거북이'라니까! 왜 엄마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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