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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6. 2023

우리 이상한 사이 아니야

오해 금지, 착각 금물

2023. 10. 25.

< 사진 임자 = 그림자 >


"아니, 얼굴도 안 보고 그냥 집어 가기만 하는 거야?"

"응."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야."

"우리 안이상해."

"둘이 친구 아니야?"

"친구 맞지."

"근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

"그럼."

"하여튼 이상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 양반이 더 이상하게 생각되는 건 그냥 나만 그런 거겠지?

나는 하나도 안 이상하니까 그러면 괜찮은 거겠지?


한 달에 몇 번씩 나는 친구에게 친정 로컬 푸드 나눔을 한다.

어차피 혼자는 다 못 먹을 양이고, 엄마가 아예 친구 몫으로 떼어 놓으신 그것을 나눠먹는 것뿐이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싸서 주는 것은 아니고 혹시 먹을 의향이 있는지부터 확실히 알아보고 수락한다면 절차를 밟는 것이다. 결코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녀도 결코 거절한 적이 없다 물론.

들깨와 통깨, 참기름, 고춧가루, 다진 마늘, 된장, 고추장 같은 기본양념에서부터 수박, 토마토, 참외, 아로니아, 복분자, 무화과 같은 제철 과일은 덤이고 달걀부터 각종 야채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을 거의 나눠 먹는 편이다.(많지는 않더라도 맛이나 보라고 말이다.)

며칠 전에도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별일 없지? 별일 있어도 없어야 돼. 오늘 퇴근길에 어때? 누가 보기 전에 남몰래 집어 가. 아무리 뒤져도 고기는 없어. 고기까지는 사서 못줘."

내가 이렇게 연락을 하고 내 차 트렁크 쪽에 숨겨 두면

"알았어."

이렇게 답장을 보내오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나는 농사짓는 부모님 덕분에 사 먹을 일이 거의 없는 야채들을 그 친구는 전부 사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한 일이었다.

시초는 2019년도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갔을 때였다.

알고 보니 친구와 우리 집과의 거리는 차로 10분에서 15분 거리였다, 고작.


친구도 직장 여성이었고 나도 그전까지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자 연락이 더 자주 닿았고 나는 건수만 생기면 뭐든지 바리바리 싸서 친구에게 전달했다. 육아휴직은 친구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만든다.

출근할 일이 없으니 친정에 가서 부모님 농사일을 좀 돕고 일당 대신 갖은 로컬 푸드를 한가득씩 가져와 사방에 보시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 있는 직장 지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주로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도서관 가는 길에 우리만의 비밀 장소에 농산물을 숨겨 놓고 나는 볼일 다 봤으니 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집어가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는 내 갈 길을 갔다.

어차피 우리 집 네 멤버가 와구와구 먹어 치운다고 노력해도 다 못 먹을 많은 농산물을 욕심껏 가져와 지인들에게 나눠주니 버리게 되는 양도 확연히 줄고 서로 좋은 일이었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는 내 친구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우리 집 근처에 올 일이 있어 잠깐 얼굴을 본다고 해서 마침 집에 넉넉하게 있는 농산물을 나눠 먹게 되면서 지금에까지 이른 것이다.

난 그냥 많이 있어서 준 것뿐인데 친구는 종종 각종 쿠폰을 보내온다.

굳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받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서로 부담 없이 있는 걸 나눠 먹자는 의미였는데 항상 챙겨주는 내가 고맙다면서 우리 집 남매가 일용할 간식거리를 보내오는 것이다. 그러면 어쩔 땐 내가 다 부담스러워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대면 전달식을 하게 된 데에는 코로나 영향이 컸다.

처음엔 지하 주차장까지 온 친구를 마중 나가서 직접 전달했으나 세상에 흉흉해지고 몹쓸 역병이 창궐하자 내가 생각해 낸 것이 그것이었다.

"얼굴 볼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내가 준비해 둘 테니까 가져가기만 해. 드라이브 스루, 알겠지?"

친구도 대찬성을 했고 암묵적 합의 하에 수거 시간은 저녁 6시 이후로 정해졌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보고 남편이 이해가 안 된다며 한마디 하셨다.

"무슨 친구가 그래? 친구가 왔는데 얼굴도 안 봐?"

"꼭 얼굴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친구잖아. 달랑 그것만 가져가고 얼굴도 안 본다니까 이상하다."

"목적이 그거잖아. 내가 준 거 챙겨가면 그만이지 꼭 만나서 얘기하고 그래야 돼?"

"그건 아니지만."

"정말 할 얘기 많고 만나야 될 일이 있으면 한 번씩 날 잡아서 보면 되는 거지. 서로 바쁜 사람들끼리 뭐 주고받을 때마다 볼 필요 있어?"

"그래도 좀 그렇다. 하여튼 이상한 사람들이야."

그 양반의 상식에서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그 양반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까.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본인 생각하고 다르면 다 이상한 거야? 사람이 어떻게 다 같을 수가 있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우린 매번 얼굴 안 봐도 하나도 안이상해. 하여튼 내가 하는 일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무슨 간섭이 그리 심하냐고? 내가 이바지 싸 들고 가서 내 친구한테 전달해 주라고 했어, 아니면 내 대신 파견하기라도 했어? 엄마가 나눠 먹으라고 많이 줘서 나눠 먹는 것뿐인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친구 얼굴을 보든 발을 보든 무슨 상관이냐고? 옆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솨! 제발 우리 일에서 좀 빠져."

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 그 양반은 본인의 상식에서 좀 아니다 싶은 것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고 나만 생각해 왔다.


"근데 초록색 덩어리는 뭐야?"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래기와 호박, 고추와 도토리묵, 상추와 시금치, 단호박 사이에서 정체 모를 그 덩어리를 들고 어리둥절했나 보다.

지난번에 딸과 함께 모싯잎 송편을 만들어 보라고 반죽을 준다는 것을 깜빡하고 못 보내서 이번에 보냈는데 친구는 그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직은 손으로 주물럭 거리고 만들어 보는 일에 흥미가 남아있을 나이(6살)인 친구의 딸을 생각하며 보낸 것이었다.

"내가  떡 반죽 보여줬더니 OO이가 파인애플이랑 과일 넣어서 송편 만들자고 한다."

그 집 딸은 금세 야무지게 계획도 다 세웠다.

콩을 보내면 콩을 까고, 쪽파를 보내면 쪽파를 다듬고, 화분을 보내면 정성스레 물 주면서 기른다고 종종 친구는 딸 얘기를 한다.

이 맛에 내가 못 끊는 거다.

친구도 친구지만, 그 어린것이 나의 이바지를 모른 척하지 않아서, 다정하게 대해서 말이다.

쉽게 끊을 수 없는 이 중독성, 끝내 헤어 나오지 않더라도 결코 아무런 해가 없을 치명적인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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