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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31. 2023

직장인이 바빠지면 무직자가 피곤하다

섣부른 판단 금지

2023. 10. 30.

< 사진 임자 = 글임자 >


"당신 얼굴 진짜 좋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아니, 없는데."

"얼굴이 세상에 걱정 하나도 없는 사람 얼굴이야."

"내가 걱정이 왜 없겠어? 댁이 제일 걱정이라니까."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다 안다.

슬슬 시작할 때도 됐다.

그 고질병, 나만 알고, 나만 당하는 그것 말이다.


벌써 몇 주 째던가, 남편이 밤낮도 없이, 주말도 없이 일만 하고 산 지가.

큰 일(?)을 앞두고 있어서 최근에 아주 심하게 바빠지셨다.

매일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힘들게 보이는데 당사자는 오죽하랴.

각오를 하고 근무지를 옮긴 것이긴 하지만 너무 일에 치어 살고 있는 요즘이다.

2~3주는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주말 내내 출근하는 것은 기본이고 평일에도 빠르면 12시 안팎, 어쩔 땐 새벽 2시가 넘어 들어오기도 한다.

말로만 듣던 공무원의 진정한 워라벨(war-label)이다.

공무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직장인들에겐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니까.

바쁠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하필 지금이 한창 그 바쁜 시기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때라 달리 도리가 없다.

정말 피곤해서 하루 쉬고 싶어도 연가조차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빠, 아빠 얼굴 본 지 정말 오래됐어."

지난 주말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제 아빠를 보고 반기며 말했다.

"그러게. 아빠가 맨날 늦게 오니까 너희는 자고 있어서 못 봤네."

"이제 우리랑 놀아줄 수 있어?"

철없는 어린것들은 아빠만 보면 놀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이젠 굳이 아빠랑 같이 안 놀아도 될 나이 같은데 말이다.

"얘들아, 아빠 요즘 새벽에 들어와. 일이 많아서 피곤한데 너희랑 같이 못 놀 거야. 바쁜 일 다 끝나면 그때 같이 놀자고 해. 오늘도 출근해야 한대."

내가 중재에 나섰지만 순순히 물러설 아이들이 아니다.

"주말인데 왜 가?"

"주말이어도 일이 많으면 출근해야지 어쩔 수 없어."

"아빠 안 됐다."

딸은 측은지심마저 보였다.

나도 진심으로 안쓰러웠다.

주말도 없이 일만 하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그런데,

측은지심에 눈물까지 찔끔 나오려고 할까 봐 그는 아예 나의 눈물샘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당신은 진짜 세상에 걱정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의 얼굴이야. 얼굴 좋아졌어."

도대체 뭐가 얼굴이 좋아졌다는 건지, 도대체 세상에 걱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궁금했다.

최소한 나는 나 같은 얼굴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만 직장 생활하느라 또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는 건가?

좀 잠잠하다 싶었더니 일도 너무 많고 바빠서 쉴 참도 없이 일만 하고 있는 자신에 비해 '출근도 하지 않는' 나는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사는 사람이 아마 당신일 거야. 아무 걱정 없는 사람 같아."

라는 이런 몹쓸 말의 기원은 2019년 내가 육아 휴직에 들어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걱정이라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리고 나가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때에 들은 말이다, 남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하지만 그 말은 정작 내가 하고 싶었다.

작년에 남편이 육아 휴직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내가 복직을 한 지 일주일 만에 일을 그만두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라는 성급한 주워 담지 못할 말을 해버린 후의 남편의 행태를 보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으니 혼자 다 알아서 하란 식으로 한 발 물러 선 남편이야말로 세상 걱정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없는 것 같았다'는 것이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의 사정을 내가 섣불리 짐작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살 수가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다만 내색을 안 할 뿐이지.

굳이 내색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래, 요즘 정말 많이 힘들지?

고생이 많아.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비록 출근은 안 하지만,

내가 아무 걱정도 없이 사는, 그런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이 양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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